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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창보자기

포장이 포장으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

by 단 정




선물을 고를 때 정말 고민이 많습니다. 받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사소한 정보들까지 모두 동원해 선물의 기준을 만들어 보지만 그래도 어렵습니다. 선물은 받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주는 일이니까요. 받아도 그만 받지 않아도 그만인 선물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일본의 타사튜터라고 불리는 이시구로 토모코는 본인이 쓴 작은 생활이라는 책에 ‘시답잖은 것을 선물하면 시답잖은 것이 돌아온다.‘ 고 했습니다. 자신의 물건보다 선물을 살 때 더 공을 들이라면서요.


단정의 것들로 선물하고 싶다며 찾아주시면 당연히 배로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손님들의 고민과 걱정들을 해소해 드려야 하는 것까지가 제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게다가 먹을거리는 입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맛이나 재료에 대해 더 꼼꼼하게 설명을 해야 합니다. 포장에 시간이 걸린다며 뭉기적거리며 손님을 붙잡는 이유입니다.


먹을거리는 당연히 잘 만들어야 하고, 그 다음은 포장입니다. 포장을 한 겹 한 겹 풀어낼 때마다 설레는 마음은 선물만이 가지는 특권입니다. ‘예쁘게 해 주세요!‘라는 부탁은 보통 이때 따라붙습니다. 한편 단정만의 매무새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해서 더 정성껏 공을 들입니다. 포장법은 오랜 시간 수정을 거듭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제품이 유리병에 담겨 있기 때문에 깨지지 않도록 습자지와 종이상자로 기본포장을 합니다. 다음에 어울리는 스티커를 상자 겉면에 붙이고 제품에 대한 주의사항과 연락처가 적힌 엽서를 동봉해 쇼핑백에 넣습니다. 이후에 좀 더 특별한 것을 원하실 때는 직접 제작한 보자기로 좀 더 어여쁘게 매듭을 지어 드립니다. 단정에서는 내용물의 모양이나 크기에 따라 3가지 종류의 매듭을 쓰고 있습니다.

단정의 보자기는 소창으로 만듭니다. 소창은 면원단의일종이며 한때 강화에서 생산되던 특산물이었습니다. 조직이 성글게 짜여 보드랍고 흡수력이 뛰어납니다. 어릴 때는 기저귀나 속싸개로, 살림에서는 행주로, 결혼식에서는 함끈으로, 장례식에서는 관을 매는 끈으로 사용되며, 사람의 피부와 삶 속에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는 천이기도 합니다. 소창 원단을 처음 받으면 풀이 먹여져 있어 뻣뻣하고, 색도 누렇게 돌아 다소 투박해 보입니다. 하지만 한두 번 세탁하면 풀기가 빠져나가면서 보들보들한 감촉이 살아납니다. 따뜻한 촉감 덕분에, 왜 이 천을 아이들 기저귀로 사용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재봉을 해주시는 언니에게 맡겨 보자기로 제작한 뒤 직접 세탁하여 사용합니다. 다림질은 따로 하지 않습니다. 구깃구깃한 주름을 펴가며 매듭을 짓다 보면 왠지 모르게 따뜻한 기분이 들고, 오히려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단정의 손님들도 소창 본래의 자연스러운 주름과 푸근한 감촉을 그대로 느껴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정에서 소창을 사용하게 된 더 결정적인 계기가 있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자수선생님께서 삶은 달걀을 손바닥만 한 '석작'이라는 대나무 바구니에 넣어 소창 보자기에 싸서 주신 적이 있습니다.바쁜데 끼니 거르지 말자는 말과 함께요. 진심으로 아낌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깨끗이 비운 석작을 다시 싸면서, 전하는 마음이 포장으로도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뒤로 단정의 포장에 소창 보자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전하는 법을 진심으로 본받고 싶었거든요. 그런 마음을 알아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단정의 호두정과를 유리병에 넣어 소창보자기로 만두처럼 매듭을 지은 것은 가장 잘 나가는 단정의 선물입니다. 언젠가 나이가 지긋한 여사님이 젊은 사람이 포장을 어찌 소창으로 했냐며 현명하다며 단정의 선물은 받아보는 사람들이 먼저 알아본다고 하셨습니다. 어깨에 기분 좋게 힘이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반대로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불편한 상황에 부딪치기도 합니다. 흰색은 어르신들에게는 죽음을 의미하는 색이다 다른 색은 없느냐, 백화점에서 포장해 주듯이 화려한 포장지나 큰 리본 같은 것을 사용할 수 없냐는 그런 내용들입니다. 물론 단정도 처음부터 소창 보자기만을 사용했던 것은 아닙니다. 보라색, 카키색, 분홍색 등 여러 가지 보자기를 썼었습니다. 재질도 면, 나일론, 비치는 소재 등 다양하게 써보았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것이 없었습니다. 손님의 요구에 맞게 다양한 포장을 해볼 수 있겠지만, 단정은 백화점의 포장코너가 아니라 먹거리 가게이니가요. 어울리지 않는 포장으로 제품과의 균형을 깨뜨릴 수 없었습니다. 가게만의 색과 생각을 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 지점이었습니다.


쉽게만 생각했던 가게의 색을 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단정’이라는 단어는 특정한 색이 아니라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소창 원단을 떠올리면 흔히 흰색을 먼저 생각하지만, 사실 소창이 주는 감성은 그보다 더 넓고 깊습니다. 스며드는 듯한 가벼움, 손끝에 감기는 부드러움, 오래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수수함. 하나의 색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감각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흰색이라서 소창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소창보자기이기 때문에 흰색이 된거지요. 그렇게 고민한만큼 이제는 소창으로 포장한 제품을 보고 더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포장을 위한 포장을 하며 쓰레기 역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비닐 포장지나 리본 같은 것은 쓰레기봉투에 들어가 버리지만 소창 보자기는 받는 분의 주방 서랍에 자리할 확률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그러니 하찮게 여기지 마시고, 잘 보관해 두었다가 재활용해 보세요. 재료의 물기를 거르거나 행주로 사용해도 좋습니다. 다시 선물하실 일이 있다면 소창 보자기로 잘 묶어서 선물해 보아도 참 좋겠습니다.


이렇게 단단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손님들의 불만들이 들릴 때마다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럴 때마다 메모해 놓은 문장을 다시 되새깁니다.


첫째. 단정스러울 것,

둘째.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전체의 균형을 깨지 말 것.

셋째. 더하기보다는 덜어낼 것.


혹시 선물하실 일이 있으신가요? 소창보자기로 싼 단정한 선물을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문을 두드려 주세요.정성껏 여러분들의 선물을 준비해 드릴게요.




먹고사는 일 단정하게 합니다.
instagram. @_dan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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