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도시락 일기 #2
도시락을 싸게 되면서 오히려 내 식탁은 풍요로워졌다. 사실 구내식당 밥은 되게 단조롭다. 물론 영양사 선생님이 저렴한 식권 가격에 맞춰 고심하고 고심해서 단가와 영양 균형을 맞춘 식단이겠지만, 그러다 보니 매주 반복되는 메뉴가 나온다.
도시락을 먹게 되면서 매일이 신난다. 콘텐츠의 바다에 살면서도 요즘 왜 이렇게 볼 게 없냐며 이리저리 OTT를 옮겨다니기만 하고 클릭은 안 하다가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다 보니 간단한 요리를 만드는 영상들에 눈이 가고 "한 달에 10만 원 도시락 만들기"같이 제목만 봐도 따라 하고 싶은 게시물을 저장하기 바쁘다. 알고리즘이 정말 신기한 게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스마트하게 모든 SNS에서 관심 콘텐츠를 보여준다. 식기도구라던지. 레시피라던지. 다이어트라던지. 쓰다 보니까 좀 무섭다.
그런데 최초 기획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도시락을 싸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아내가 도시락을 싸주고 있다.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아내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는 데다가 내가 다이어트까지 한다고 하니까 아주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본다. 공짜밥을 얻어먹는 것 같아서 송구스럽다. 레시피를 적고 싶은데 내가 한 요리가 아니다 보니 잘 모르겠다. 아내가 자주 보는 채널을 몰래 보니까 뚝딱이형, 딸을위한레시피, 마카롱여사님 이런 게 있었다. 양념장 레시피도 딸을위한레시피에서 보는 것 같았다.
직장인에게 도시락은 속도가 생명이다. 빠르고 간단하게 도시락을 쌀 수 있어야 처음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긴다. 두부부침과 삶은 양배추는 간단하다. 가지볶음 역시 저녁으로 먹은 가지 파스타에서 가지를 조금 덜어 놓은 것이다. 남기는 걸 싫어하니 나는 살을 못 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두부부침과 양배추는 레시피가 필요 없는데, 사실 이 요리의 핵심은 간장소스다. 어디든 잘 어울리는 만능 소스 같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