흣쨔
내심 기대 가득했던 반딧불 투어에 도착했다. 이미 밤은 성큼 다가와 주변의 불빛을 삼켰고, 그 사이에서 가이드를 따라 걸었다. 우리는 그날의 가장 마지막 손님이었다. 관람대기 줄의 마지막에 합류하자, 가이드는 주섬주섬 뿌리는 모기약을 꺼냈다.
“투어는 배를 타고 강을 한 바퀴 돌기 때문에 모기가 많아요.”
이미 말라리아약을 챙겨 먹고 있었지만 괜히 모기에 물렸다가 된통 당할까 봐 더 꼼꼼히 뿌렸다.
* 반딧불이를 잡아가면 벌금을 뭅니다.
* 사진 촬영 금지
주의사항을 꼼꼼히 읽어보던 차에 앞에 있던 작은 꼬맹이가 눈에 들어왔다. 똘망똘망한 눈, 곱슬곱슬한 머리, 나보다 좀 더 까만 피부.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다. Hi- 날 빤히 바라보던 아이는 부끄러운 듯 엄마의 뒤에 숨었다. 머리부터 몸까지 검은 천을 두른 엄마. 그리고 엄마의 허리에 손을 감고 있는 아빠. 이슬람 가족의 모습.
그들은 화목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부부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단순히 이슬람 가족을 생각하면 가부장적인, 강압적인 모습이 떠올랐던 난, 순간 부끄러웠다. 편견 가득했던 나의 시선들. 물론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이 화목한 모습 말고도 다른 모습도 있겠지만, 무조건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올렸던 나를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 많은 걸 새롭게 배운다.
아주 작은 배에 우리 셋, 그리고 같이 투어를 다녔던 한 커플과 함께 올라탔다. 커플은 제일 앞 뱃머리에, 우리는 나란히 뒷좌석에, 그리고 우리 뒤엔 노를 젓는 분이.
“Lets go.”
투어가 시작되었다.
주변의 소리라고는 노를 젓는 소리와, 풀숲 어딘가에서 벌레가 내는 소리, 강이 흘러가는 소리뿐.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색을 잃은 강물과 하늘, 그리고 깜깜한 밤하늘보다 더 깜깜해 실루엣만 보이는 야자수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뒤에서 노를 젓는 분, ‘그’는 우리를 먼저 강의 반대편 끝으로 데리고 갔다. 풀숲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반딧불이는 과연 어디 있는 걸까. 그리고 아주 가까이 다가갔을 때 드디어 작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Here, Firefly.”
어느새 풀에서 작은 빛 하나를 손에 얹은 ‘그’는 풀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내게 손을 내밀었다. 빛 하나가 그의 손을 타고 나에게 건너온다.
반짝, 눈곱만 한 불빛이 움직인다.
안녕,
반짝.
하지만 벌레라면 무서움을 참지 못하는 이 흣쨔는, 얼마 버티지 못했다. 흐잇 아쉬워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생명체는 내게 작은 교감을 남겨주었다.
작은 빛이 나를 떠나 날아가고, 그것을 따라 눈이 닿은 곳엔 더 많은 빛들이 보였다. 하나둘 많아지더니 어느새 풀숲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반짝반짝. 풀의 모양대로 반짝이는 불빛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같다. 더 숨을 죽이고 그들이 반짝이는 대로 가만히 바라본다.
강을 따라 배를 움직일 때마다 반딧불이가 점점 더 많이 보였다. 분명 시작할 때는 깜깜한 강이었는데 이젠 반짝거리는 강이 되었다.
‘그’가 노를 저어 풀 한쪽을 들어 보여준다.
“와아-” “이야-” “Beautiful!”
다른 곳보다 더 많이 밀집된 불빛에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우리 셋은 계속 추임새를 넣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 추임새에 신이 난 ‘그’는 더 천천히 강을 돌았다. 반짝임을 눈에 더 많이 담아갈 수 있도록.
투어가 끝나고 배에서 내리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땡큐, 뜨리맛 까시. ‘그’가 우리의 인사를 듣고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바바이- 인사를 한다.
반딧불이도 바바이-.
“아, 요정을 본 것 같아.” 모시가 말했다.
“맞아, 너무 반짝반짝 예뻤어.”
모시와 감동을 주고받던 중, 이상하게 조용하던 선호가 입을 열었다.
“… 끙, 난 눈에 뵈지도 않아서 실망했어. 너무 작잖아! 잘 보이지도 않았는걸!”
혼자 쉭쉭 대는 선호를 보고 우린 웃었다. 하하, 맞아, 좀 작긴 했어.
-
“투어 시간이 다른 팀보다 훨씬 길었어요.”
가이드분의 말을 듣고 우리 셋은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우리의 추임새가 한몫했나 보다. 싱긋- 서로 웃음을 주고받으며 투어 차에 올랐다.
창문 밖의 깜깜한 밤하늘 위로, 이 아름다웠던 풍경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
나의 엄마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