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꼬비 Aug 19. 2019

말레이시아 땅을 밟고

흣쨔


하늘의 시간은 설렘이었다. 처음으로 동남아에 여행을 가는 데다, 처음으로 친구들끼리 해외여행이니 설렘 가득이었다. 하지만 아주 솔직한 마음속에서는 무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쿵덕쿵덕…    

비행기가 발을 내려 말레이시아 땅을 밟는 순간, 몸에 나 있던 털이란 털, 근육이란 근육은 바짝 힘을 주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자, 숙소에 가려면 픽업 서비스 차를 타야 해. 우리가 도착한 걸 알리고, 만나자고 연락을 해야 해. 그러려면 환전을 하고, 유심을 사야 해. 그러고 전화를 하자.….' 콩닥콩닥,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헤집고 다닌다. 짐을 찾는 와중에도, 짐이 없어지지 않고 잘 도착했겠지, 말은 잘 통하겠지, 나 영어 잘할 수 있겠지, 픽업 서비스는 사기 아니겠지, 소매치기당하면 어떡하지 등등 걱정은 자꾸만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불안한 눈빛으로 슬쩍 옆에 있는 친구들을 보니 웬걸, 그들은 신나 있었다. 아 안 돼, 나만 긴장 상태인 건가!


말레이시아 투어 책에 의하면 공항의 환전은 비싸단다. 그래서 소액만 환전하려고 했다. 큰돈일수록 환전율이 높다기에 미리 5만 원 권을 준비해 갔다.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책에 나왔던 공항 지도를 떠올려 제일 왼쪽에 위치한 환전소를 향해 돌진했다. 주변은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일단 환전부터 해야 해!

⊙ 팁)
하지만 5만 원 권이라고 해서 더 환전율이 높았던 것은 아니었으며, 책에서는 싸다고 했던 쇼핑몰의 환전이 공항보다 더 비쌌다.


무사히 환전을 마치니 이제 다음 목표가 불타올랐다. 유심을 사야 한다, 유심을 사야 한다!

여러 통신사가 줄 지어 서 있었으나 고민 끝에 결국은 다 비슷할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DIGI라는 통신사에 들어가 ‘유심을 사고 싶다’고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처음 마주 본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눈은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확실한 편견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사기를 치진 않을까 몸이 또 굳어갔다. 하지만 걱정 마, 그들은 우리에게 사기를 치지 않았다. 정말 정확한 정보만 알려주었고 유심을 장난 없이, 거짓 없이 잘 바꿔 끼워주었다. 휴, 나의 찌릿 째릿한 눈빛은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임무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픽업 서비스 차 만나기! 말레이시아용으로 띠롱- 변신한 나의 폰으로 운전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숙소의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연락처를 알려주었기에 수월하게 연락할 수 있었다. 그에게 연락하니 '아니, 벌써 도착했나요?'라는 답이 왔다. 오, 맞아. 예매 시 저가 항공을 선택했던 우리는 지연될 확률을 계산해 픽업 서비스를 공항 도착 2시간쯤 뒤로, 넉넉히 와달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연될 일 없이, 게다가 좀 더 일찍 공항에 도착하고 말았다. 오, 어떡하지?

그러던 중 그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울려 퍼지는 영어 소리에 또다시 잔뜩 긴장했다.    

조금은 짧고 더듬더듬 영어였지만 그와의 소통은 원활했고 무사히 모든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는 일찍 도착한 우리를 위해 당장 데리러 와주겠다고 말했다. 통화가 끝나고 모시와 선호에게 상황을 요약해주자, 둘은 잘 됐다, 흣쨔 영어 잘한다, 라며 호들갑을 떨어주었… 지만 난 여전히 긴장 상태라 그들의 호들갑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가 곧 도착한다는 전화가 다시 울리고 우리는 차가 다니는 도로 앞에 나와 섰다. 그가 보내준 차 번호를 눈 크게 뜨고 살피며 얼른 이 긴장 상태가 해소되길 원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택시 운전사들이 자꾸만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 택시 타, 싸게 해 줄게, 이거 타, 저거 타. 우리는 괜찮다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고 결국 공항 끄트머리에 살짝 서 있었다.



빵빵- 아! 그 차 번호다! 그가 도착했다! 열심히 손을 흔들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표시했고, 우리는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그와 인사를 나누고 짐을 실었다. 이야, 이야! 나도 기쁜 마음에 얼른 차를 탔다. 선호와 나는 뒷자리에, 모시는 앞자리에… 어라 그런데 모시가 차에 탔더니 화들짝 놀란다. 운전사도 문 앞에 서서 휘둥그레 모시를 쳐다봤다. 오잉 무슨 일이지, 하하! 알고 보니 말레이시아는 우측통행이 아닌 좌측통행이라, 차량의 운전석도 오른쪽에 있었다! 우리나라와 반대였다! 선호와 나와 그는 깔깔깔 웃었고, 모시는 새빨간 토마토의 얼굴이 된 채 왼쪽으로 옮겨 탔다.    



휴 차도 잘 탔다. 한껏 긴장이 풀린 몸은 곧 창밖 야자나무 숲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새로운 장소에 왔다는 것이 확실하게 실감 났다. 수많은 야자나무가 펼쳐진 이국적인 숲이란!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입에서 새어 나온다.    

정말, 말레이시아에 왔다.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낯선 단어, KELUAR. 말레이어로 출구(EXIT)라는 뜻이다.


픽업 차를 타고 가며 그린 그림. 거울 속으로 보이는 운전사의 얼굴도 그렸다.


이전 06화 6시간, 긴 비행에서 살아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