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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삶 Oct 12. 2018

육아가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우린 별로 안싸웠어요.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진..


올해 3월 태어난 우리 아기는 너무 예쁘다. 가끔은 조그만 얼굴이 울부짖으며 우는 것까지 귀여워서 가만히 보고 있다가 달래주기도 한다. 아기를 임신하고부터 “낳으면 더 힘들어” 라는 주위의 말에 두려움과 함께 나는 안그럴거야 하는 마음으로 작게 콧방귀를 뀌기도 했다. 출산 이후 아기가 점점 커 가면서 이런저런 어려운 일들도 많았고 내 맘같지 않은 아기의 마음(?)에 쩔쩔매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육아는 할만한데?’하는 남모를 자신감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육아의 뒷면에 숨겨져있던, 그리고 지금 점점 까발려지고 있는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이제 결혼한지 1년이 조금 넘었다. 나의 갓 20살 넘는 시간부터 서른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남들이 하듯이, 또는 그보다 더 뜨겁고 끈질기게 열심히 연애를 해 왔다. 그리곤 작년 결혼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2차전을 시작하고나서 그 연애의 연장선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정말 커졌다. 서로를 짠하게 보면서 더 아껴주려 노력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며 살았던 일년이었다.


결혼 이후 바로 시작된 임신기간도 남편과 함께였으니 힘들지않았고, 남편의 퇴근 이후에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함께 매일 깨를 볶으며 행복하다는 말을 연신해왔던 우리였다.


열달의 임신기간을 별탈없이 채우고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의 출산. 오히려 내가 본 출산의 장면보다 남편이 보고 느낀 출산이 더 깊고 넓었다. 꼬물거리며 움직이는 생명체(?)를 보고 키워가면서 우리 둘은 ‘우리’ 라는 말보다 ‘가족’이라는 말에 더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빠르게 커가는 아이와 함께 빠르게 생겨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물론 내 뜻대로 되지않는 아이를 보면서 한껏 예민해진 성질머리를 감추지 못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틱틱대는 수가 늘었다.


주말 하루는 아침 일찍 깬 아기를 남편이 돌본다며 방을 나갔다. 거실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조금 늦게까지 잠을 잘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그렇지만 소리 꽥꽥지르는 5개월 아기의 목소리에 이내 잠을 깨고 거실로 나가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아침을 먹으며 먹으며.. 갑자기 우리의 둘 사이가 어색해지면서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낯선 분위기에 나도 말 한마디 안하고, 남편도 딱딱한 표정으로 밥만 먹었다. 나는 ‘내가 너무 늦게 나가서 남편이 화가 났나?’ 생각하다가 ‘아니, 나도 평일에 매일 새벽이고 아침이고 나가서 아기 보는데 주말 하루에 좀 그랬다고 화가 난거야?’ 까지 생각이 도달하니 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은 일어나서 ‘수고했어’라는 한마디라도 해 주었으면 하고 바랬단다.  더 자라고 문 닫고 거실에서 아기를 보느라 힘들었는데, 잠자고 일어난 아내가 아기에게만 인사하니 아침일찍부터 한 수고를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 속에서부터 화와 서운함이 밀려오기 시작한거였다.




너무 사소하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겐 전혀 사소하지 않은 일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시시때때로 생긴다. 5년 이상의 길고 긴 연애기간동안 싸운 것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던 우리도 지금은 예상치 못한 일로 다툴때가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어이없는 것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로 인해 짜증난 내 기분이 전혀 관련없는 배우자에게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어 감정적으로 서운함을 느끼면서 다투게 될 때다. 그 기분을 서로 풀며 미안해할때에도 서로에게 잘못한 것이 특별히 없으니 서로 안으며 주어 없이 미안해.. 내가 더 잘할게.. 로 끝낼때가 많다. 흑흑

어쨌든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아기 뿐만 아니라 이미 컸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의 인내를, 사랑을 키우는 일종의 훈련인 것이라고 스스로 되뇌인다. 그리고 배우자에게도 이를 시시때때로 주입시키며 지금껏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같이 잘 살아보자고 어깨 두드리며 기운을 불어넣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집에 와서도 아기보느라 쉴 수 없는 남편이나, 하루 종일 아기 보느라 내 자신은 잊고 머리감을 시간도 없는 나나, 갑작스럽게 세상에 태어나가지고 하나부터 열까지 적응해야할 것 투성이인 아기나 다 정말 찡하고 짠한 존재들이다.

그래도 잠자기 전마다 ‘결혼한 삶이 나는 정말 행복해’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짠하다고 수고한다고 머리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가족이 항상 곁에 함께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지 출처 :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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