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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삶 Oct 13. 2018

‘엄마’는 자연스럽지 않다.

왜 몰랐을까, 그렇게 힘들게 얻어내었다는 것을



꽃다운 나이(?)인 이십대의 중반과 후반의 아주 애매하다고도 할 수 있을 때에 난 결혼했다. 길고 긴 연애의 터널을 지나 결혼이라는 어떤, 우리 연애의 복잡하고 별 일이 다 있느라 가끔은 어렵기도 했던 그 시간들을 그래도 어떻게 잘 마무리하고 다시 처음부터 상큼하게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대학생활에서 망한 학기를 어영부영이라던지 어떻게 어떻게라던지, 어쨌든 간에 마무리 지어 끝내고 다시 큰 각오를 가지고 새 학기를 시작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내 결혼생활은 정말이지, 행복했다. (물론 지금도 행복하다) 인생은 trade-off 라고 했던가, 결혼으로 인해 포기해야 했던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얻는 기쁨이나 ‘정말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그 뿌듯함이  참 컸다. 남편에게 그 동안 받았던 애정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보살핌받고 ( 여자라서라기보단 배우자라서) 사랑받고 온전한 가족으로서의 소속감까지 느낄 수 있는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그렇게 신혼을 보내면서 우리는 아기를 가졌고, 예쁜 아기가 태어났다. 이는 어떻게 보면 결혼 이후의 당연한 인생의 순서이겠지만, 당사자로서 느꼈을 때에 이 과정은 정말 큰 당혹감의 연속이었다.

여자로서 이십대의 중후반은 너무나 큰 변화의 반복이다. ‘학생’이라고 몇년 불리워지지도 않았는데 결혼을 준비하면서는 갑자기 어디를 가나 ‘신부님’이란다. 그 호칭을 결혼 준비 과정에서 약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듣다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남들은 나를 보고 ‘유부OO야’ 하고 부른다. 그 듣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것은 전혀 아니고 나는 가만히 있는데 몇 년 사이에 나를 인식하는 내 바깥은 너무 달라지는 거다.

뭐, 여기까지는 사실 이후의 상황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게 된다. 왜냐고?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나라는 사람은 갑자기 나도 어색해질 정도로 남들에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임신 직후, 병원 진료에서부터 시작이다. 이 전의 나는 마냥 예쁘게 꾸미고 뭔가 남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의 그런 아가씨였는데 (아닐 수도 있다), 정기적으로 가는 산부인과에서 이상한 의자에 앉아 생전 처음 받아보는 진료를 받는다. 나는 너무 이상하고 민망하고 왠지 모르게 충격적인데, 병원의 사람들 중에서 나만 이런 민망함을 느끼는 것 같다. ‘모든 옷을 탈의하고 아래만 이걸로 가리고 의자에 앉아있으시면 의사선생님 들어가실거에요’ 같은 너무너무 이상한 소리도 자연스럽게 하시니 그게 더 당황스럽다. 병원에서 오직 나만 느끼는 그 부자연스러움의 감정은 열 달 동안 익숙해지지 않는다.

(뭐 출산은, 너무 길고 복잡하니 패스)

언젠가 봤던 다큐에서는 출산 이후 울며 아기를 안는 그 엄마들이 기억나는데, 나는 턱-하니 내 가슴팍에 놓여진 미끌거리고 꿈틀거리는 어떤 따뜻한 생명체라고나 할까. 내 고통의 소산물이라고 해야할까, 이 고통이 드디어 끝났다는 그 시원한 마음과는 관계없이 처음 본 이 작은 아기(라고 하기엔 이런 신생아는 내 평생 너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떤 생명체라고 부르는게 나을 수도 있다.)가 내 아이라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내 뱃속에 있긴 했지만 난 너를 오늘 처음 보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 마치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이 아기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도.


나는 우리 엄마를 볼때처럼 나도 그렇게 자연스러운 엄마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되는 것이 아니고 되어야 하는 거였다.


그 맘때쯤부터 친구들은 나를 장난으로라든지, 진심이든지간에 OO엄마, OO맘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그들이 부르는 그 호칭은 뭔가 내가 너무 나이든 것 같고, 촌스러워진 것 같고, 어떨땐 추접할 것 같기도 하고, 구두신고 예쁘게 차려입는 모습보다 후줄근한 고무줄 바지와 펑퍼짐한 티셔츠가 더 익숙할 것 같은 그런. 뭔가 딱 하나로 정의내리기 힘든 이미지의 나를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아기를 보다 보면 나도 알지 못했던 그런 내 모습이 나오기 때문에 마냥 거짓말은 아닌.

그래서 출산 후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아기에게 ‘엄마가 이거 해줄게’ 라던지 ‘엄마 봐봐’와 같은 말은 너무나 어색해서 내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첫째로 살아왔던 세월 때문이었는지, ‘언니가-’ 로 시작할때도 있었으니 말 다했지.

칠개월이 되어가는 지금은 다행히도 자연스럽게 나는 엄마라고 인식하고 있고, 꼬물거리는 생명체였던 아기는 주관적으로 너무 예쁘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보고 ‘그대로네!’ 라고 말하는 지인들의 인사에 ‘내가 무슨 큰 일이 있었다구, 그냥 나는 나일 뿐이고 아기 낳은 것 뿐인데!?’ 하고 악의없이 받아치고 싶은 마음은 나만 가지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우리 엄마도, 내가 너무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엄마다운’ 그런 중년 여성들의 모습도 사실은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은 아니었을거다. 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진 자기 자신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인식과 한 생명을 아름답게 키워내기 위한 몇십년 간의 잠 부족과 눈물과 땀이 한데 얽히고 설켜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을 만들어 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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