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우리 엄마의 엄마. 내 아이가 생각할 나의 엄마.
올해 초, 첫 아이를 낳았다.
이런 진짜 갓난아기. 갓 낳은 아기는 처음 볼 뿐더러, '엄마'라는 새롭게 주어진 막중한 호칭과는 달리 도대체 어떻게 아기를 안고, 돌보고, 먹이고, 씻기고, 재워야하는지 어느 것 하나도 알지 못했다. 해외에 살고 있고, 한국이 아닌 여기에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흔한 조리원, 산모교실같은 것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이런 초짜 딸&며느리를 위해 다행히 한국에서 엄마와 어머님이 오셔서 산후조리를 도와주셨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엄마가 되어가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매일 새롭게 배워가고, 실수 투성이지만.
누워서 눈만 꿈뻑꿈뻑 뜨고있던 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하나 하나 스스로 터득해가기 시작했다. 생후 100일 즈음에는 혼자 발버둥치다가 뒤집기를 (얻어걸렸)했으며 그 와중에 머리는 못들어서 낑낑대면서 울던 아이가 이젠 신나게 배로 바닥을 쓸고 다니면서 기어다닌다. 엄마 아빠를 알아보기 시작하고, 조그마한 손으로 장난감을 만지고, 사회적인 미소(?)를 띄면서 뭔가를 먹고 있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한다. 남편과 나는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기를 보면서 거의 매일을 '정말 많이 컸다.', '곧 뛰어 다니고 말하면 어떤 느낌일까' 와 같은 말을 7개월 짜리 아기에게 하곤 한다.
우린 이 아기가 어떤 사람으로 커갈지에 대해서 정말 궁금해하고 있다.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가도 지금은 못보는 몇개월 전의 아기 모습을 생각하면 늦게 컸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나는 거기에 더불어 한편으로는 아기가 커 갈수록 약해지고 연로해지실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면, 여기에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하고 바란다.
30년 가까이를 살면서 누군가에게, 혹은 어디선가에서 아기를 낳으면 부모님의 마음을 안다고 누누이 들어왔다. 아직 나를 키우면서 하셨을 부모님의 마음을 100퍼센트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애 낳은지 좀 되었다고 (고작 7개월이지만), 엄마 좀 되었다고 (고작 7개월)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이 생겼는지 약간씩 알 것 같고 알아가고 있다.
결혼 후, 해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부모님과 서로 다른 대륙에서 산지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살 줄 알았다면 한국에서 직장다닐때, 다른 지역에서 대학교를 다닐때 조금 더 집에 자주 갈껄 하는 쓸모없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내가 자고있을 동안 혹시나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싶어 2년 내내 아침이면 심호흡을 하고는 휴대폰에 어떤 소식이 있는지 확인하곤 한다. (걱정이 좀 많은 편이긴 하다.) 어쨌든 시간은 가는 줄 모르게 흐르고 흘렀고, 나는 어느새 엄마가 되어 아이를 보다가도 종종 우리 부모님에 대한 아련한 마음으로, 아쉬워하는 기분으로, 마음 한편이 저미도록 생각한다.
그리고는 그 생각이 커져서 요즘에는 엄마의 부모님에 대해서 가끔 회상한다. 나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었다. 아빠의 어머니이신 할머니는 나를 예뻐해주셔서 친척 언니오빠들 모르게 항상 뭔가를 선물로 주시기도 하셨던지라 그 할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때에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엄마, 아빠가 급하게 장례식장으로 떠나시고 난 이후 내 방에서 펑펑 울며 그 삶의 마지막을 마음 아프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그렇게 크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시골분들이셔서 나랑은 멀게 느껴지기도 했고, 외가를 방문할때마다 몇 마디 말 나누지 않고 나는 그냥 친척들과 놀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느 정도 철이 들고 난 이후 두 분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는 눈물이 나지 않는 내 자신이 왠지 모르게 민망하기도 했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 아이를 보면서 나는 이 아이가 나처럼 크지는 않았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나처럼 엄마의 부모님들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나의 부모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어렸을 때부터 조금만이라도 알아줬으면, 그래서 더 친근하게 그들과 어울렸으면 하고 소망한다.
아이가 커 가면서 느끼는 기쁨과 함께 느껴지는 부모님에 대한 그 아쉬움. 해외에 나와있으면서 더 크게 느껴지는 그 마음. 무슨 이유든지 간에 우리 엄마도 첫 아이인 내가 커 가면서 그런 마음을 분명히 느끼셨을 것 같다. 아기를 바라보면서 웃지만 그 웃음의 깊은 곳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절절한 마음을 분명 엄마도 느끼셨으리라. 엄마가 된 이후에 나는 내 행동과 생각을 우리 엄마의 30년 전으로 대입시켜보곤 한다. 엄마가 지금껏 그다지 말씀하시지 않으셨던 그 속마음을 '엄마도 내 나이 땐 이런 생각을 하셨겠지' 하면서 느껴보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배우고 생각하는 것들은, 즉, 엄마를 더 알아가는 시간들이 되는 것이다.
엄마가 내 산후조리를 도와주시러 약 한 달 동안 오셨을 때에 나는 엄마가 주무시다가 갑자기 오열을 하시면서 우셨던 것을 기억한다. 어떤 꿈을 꾸셨길래 그러셨는지 궁금해서 시간이 지나고 여쭤보니, 엄마는 자신이 실제로도 그랬냐며 민망해하시면서 그 꿈을 이야기해주셨다. 엄마의 친가. 그 곳에서 방문을 여니 외할머니가 앉아계신 것을 보시고 엄마가 그 동안의 그리움에 눈물을 터뜨리며 엄마의 엄마를, 그러니까 외할머니를 '엄마아' 하면서 부르셨던 거였다. 분명 꿈이었던 것을 아셨겠지만 얼마나 좋으셨을까.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엄마의 눈은 벌게지셨었다.
나는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엄마가 이야기해주셨던 그 꿈을 자주 생각한다. 아이가 커 갈수록 내가 이 아이에게 언젠가 우리 엄마가 훌쩍이면서 이야기해주셨던 그 꿈처럼, 내가 꾼 우리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지.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리고 그땐 너무나도 그리워하고 있을 우리 엄마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 하고.
[이미지 출처 : pexel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