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다른 이 둘. 괜찮을까요
나는 작년 봄과 여름의 사이에 결혼을 하고 그 이후 쭉 미국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요즈음 약 2년이 조금 덜된 시기에 정말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해서 오랜만에 서로의 가족들, 친구들을 만났다.
시댁과 친정댁이 기차로 약 세시간이 걸리는 거리이기 때문에 각자의 부모님들께서 아쉽거나 섭섭하지 않으시도록 우리는 번갈아서 각 집에서 두세번씩 거하기로 했다.
한국으로 출발 전에 미국의 (여자)지인들은 시댁에서 거하는 것을 나보다 더 걱정했다. 이러이러하게 행동하라는 말도 들을 정도로 나보다 더 걱정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기를 출산할 때 산후조리원이 없는 이유로 인해 엄마와 어머님께서 오셔서 산후조리를 해주셨기 때문에 이는 나에겐 그다지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드디어 떨리는 한국. 시댁에서 거하는 것은 역시나 큰 문제가 없었다. 예전에 어머님과 함께 생활했던 경험과 시간이 도움이 되었기도 했고 그만큼 많이 배려해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혹은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바로 나의 친정댁에 거할때의 남편의 경우였다.
일 평생 여자아이들만 키워오셨던 우리 아빠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려 하신다. 우리 자매에게 아빠의 울타리는 크고 단단하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생들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물건들을 사주시고 챙겨주시고 가끔 집에 내려오면 맛있는 음식을 떠먹여주시기도 하신다. 남들이 볼 때에는 아직 아이 취급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아빠에게는 오랜 시간 굳혀진 그만의 사랑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을 내 남편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들로만 이루어진 집안에서 자란 남편의 가정은 내가 보았을때 정말 독립적이고 가족의 각각의 주체가 모두 어른인 느낌이랄까, 언제까지나 아이처럼 대해주시는 우리 집과는 정말 다른 분위기여서 나의 첫 인상은 신선하기까지 했으므로.
아빠는 사위와 친해지기 위해서 하나, 둘씩 이야기를 하셨다. 아빠의 나름대로 누군가를 챙기시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한데 모이면 영락없는 잔소리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심지어 이번 우리 집을 방문하는 지금은 남편이 크게 아프기까지 해서 우리 아빠의 조언아닌(?) 조언은 빛을 발했다.
‘반바지는 너무 추우니 긴바지 입고 자는게 좋을 것 같다.’, ‘일어나면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아침을 시작해야 좋다.’, ‘감기 기운이 있으니까 병원가서 주사를 맞고 와야한다.’ 등
이 중에서 몇 개는 나도 시댁에서 들어왔던 말이지만 덤덤한 성격탓에 ‘네~’ 하고 웃으며 넘겼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남편에게는 그런 세세한 것들이 짐이 되는 것 같다. 30년이 넘는 일생동안 모든 것들을 혼자 척척 해내면서 살아온 남편에게 우리 아빠의 이런 무척이나 자세하고도 끈질긴 조언들은 통할리가 만무했으며 통하는 것도 이상했다.
생각해 보면 결혼 이후 우리 아빠와 남편이 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것은 이번 방문이 처음이다. 사실 이렇게 많은 시간동안 이야기하는 것도 처음이다. 출산 이후에 긴장된 상태에서 어머님과 맞추어간 경험이 있던 나와는 다르게 내 남편과 아빠에겐 지금의 동거가 마치 사람들이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성격을 파악하고 이해해가야하는 그런 중요한 시기인 셈이다. 그것도 둘의 의지가 아니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로 인해 생긴 것이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이 두 남자. 둘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내가 본다해도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너무 달라서 참 어려운 관계인 것임은 틀림이 없다. 누구도 틀렸다거나 옳은 것이 아니라 그저 정말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함께 힘을 합치기로 했다. 나는 남편 옆에서 아빠의 그 세세한 성격을 이야기해주면서 가끔은 상처받아보이는 그 마음을 감싸 안아주려 노력하고, 엄마는 아빠에게 딸들과는 커 온 환경이 다른 사위를 이해시키며 그 모습대로 인정하도록 자기의 습관을 가끔은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것. 오늘 저녁은 내가 아빠의 저녁 퇴근길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아빠가 모르는 남편의 성격과 생각을 조근조근 이야기했다. 남편과도 오늘 낮에 아빠의 표현방식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었고, 이런 가족들의 노력을 통해서 그렇게 둘은 점점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다.
약간 벗어난 이야기같지만, 가끔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결혼한 이후의 남편과의 모습보다 결혼하기 전의 우리 관계가 더 뭔가 있어보이고 깔끔하고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부부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서로에 대해 다 터놓고 부끄러운 점이나 성격적으로 약한 면모까지 공유함으로써 생기는. 서로가 정말 가까워지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겪어야하는 어떤 사소한 것들 사이의 간극인 것으로 생각한다. 준비되어 꾸며진 채로, 항상 긴장한 상태의 멋들어진 연인을 보다가 너무나 편한 츄니링 상태의 잠옷과 민낯에, 숨길 수 없는 온갖 생리현상과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상대의 쪼잔한 모습들을 보게 되면 서로 깊게 알지 못하는 다른 이성이 더 멋있는 사람 같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서로의 그 낯선 모습들도 익숙해지고 이해하고 안으면서 둘은 더 깊은 관계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연인 사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전반적인 관계에 적용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우리 아빠와 남편처럼 정말 다른 두 사람이 나로 인해 가족이 되어가면서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그래서 나는 이 껄끄러울 수 있는 상황도 괜찮다. 다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아빠에게는 자신의 챙겨줌, 관심에 대해 무뚝뚝한 반응으로 인한 실망. 남편에게는 하나하나 간섭받고 강요받는 느낌으로 인해 우리 집 방문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그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이 두 사람, 내가 사랑하는 이 두 사람은 분명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혹은 새롭게 구성되는 이 가족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할 이들임을 알기 때문에 내가 중간에서 더 안아주고 이해하고 기다려주고 싶다. 시간이 훅훅 지나 다음번 한국 방문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어우러지는 아빠와 남편의 모습을 나는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