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남편이 퇴직한 건 널 만나서가 아닐까? 다른 여자랑 살았으면 퇴직은 꿈도 안꿨을 걸?
남편은 대기업에 생산직으로 취직해 십 몇 년을 일하다가 작년 말 퇴직했다. 그 좋은 대기업을 그만 두고 자신의 사업을 하겠다고. 이제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 그곳으로 출근하고 일한다. 직원도 아직 없고 혼자 일한다.
나는 직장에 6개월 휴직계를 내놓고 책 읽고 글 쓰는 한량의 삶을 보내고 있다. 인생의 2막을 읽고 쓰는 삶이 되게 하고자 일종의 준비 기간을 갖고 있다. 정말 세상 편해보이지 않는가. 휴직을 하고 글을 써보고 싶다는 꿈을 꾼 지 오래였지만 휴직은 내게도 큰 결정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퇴직을 결정하면서 더욱 그랬다. 둘 다 백수로 사는 건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웠다. 남편의 응원이 있었고,이 상황에 혼자 여유를 부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검열도 있었다. 어쨌든 휴직은 애초 계획한대로 결정됐고 지금은 둘다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다.
우리 둘은 벌이는 없고, 의욕은 넘친다. (딸 아이 빼고는)아무도 우리를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 어찌할 바를 모른다. 자주 루틴을 잃고 표류한다. 서로를 연민의 감정으로 지켜봐주기도 하지만 한 쪽이 너무 한가롭다 싶을 땐 냉철한 시선으로 상대를 제압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에게 눈치를 본다. 퇴직과 휴직을 허용해준 상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물론 쉽지 않다.
연애 시절부터 남편과 나는 진지한 대화를 자주 했다. 남편과의 연애는 이전 연애와는 조금 달랐다. 나는 4년제 국립대를 졸업했고 남편은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사실 내 주변엔 고졸인 우리 또래 남자가 아무도 없었다. 솔직히 남편을 알기 전엔 고졸인 남자와 결혼을 할 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다. 어쩌다 소개로 남편을 알고 만나면서 처음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사실 그때만 해도 이 연애가 결혼까지 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남자친구는 어느 대학, 무슨 과를 나왔냐'고 당연히 물어보실 부모님께 '고졸'이라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그땐 그랬다. 그냥 스쳐가는 인연일 거라고, 그냥 당장 지금 좋으니 만나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연애를 하면서 나는 남편과의 대화에서 그의 성장 욕구를 자주 발견했다. 이전 대졸 남자들에게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매력이었다. 실제로 좋은 대학 출신인데도 만나면 게임 이야기만 하고, 허구헌날 술만 마시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많았다. 그는 배우고 성장하고 싶어했다. 나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우린 차 안에서 진지한 대화를 했다. 서로의 꿈과 열정, 삶의 지향점에 대해서.
친정이나 시댁에 가면서, 드라이브를 하면서, 쇼핑을 하러 대도시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꽤 진지한 대화를 한다. 마음 먹고 서울행이라도 할 때면-서울까지는 5시간 가까이 걸린다- 매우 건설적인 대화가 오간다. 나는 남편과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매우 좋아한다. 서로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장단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깊이 있게 이야기한다. 서로의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어떤 꿈,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은지, 육아 철학은 무엇인지, 무엇이 자신의 꿈을 가로막고 있는지, 어떤 습관을 버리고, 또 만들어 나가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책에서 읽은 좋은 구절이나 개념, 방법 등을 추천하기도 한다. 끝은 훈훈하게 서로를 응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언제부턴가 한 시간 이상의 이동 시간이 주어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현재 자신의 삶의 문제를 드러내며 대화를 시작한다.
"자기가 나를 키우고, 내가 자기를 키워서 우린 더 잘돼자!"
"우리 자기는 커서 뭐가 될라고 이러나 몰라."
김미경 작가가 강연에서 부부는 서로를 키워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결혼 전까지는 부모가 우리를 키우지만, 결혼하고는 배우자가 서로의 부모가 되어 상대를 키워주는 거라고. 나는 그 말에 공감했다. 서로 응원하고 키워주는 부부, 지금 우리 부부의 모습이 딱 그렇다.
그도 나도 올해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남편의 퇴직을 응원하는 나를 주변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이라며 놀리기도 하고, 용기 있다고 칭찬하기도 하고, 괜찮겠냐 걱정하기도 했다. 그럴때면 나는 남편의 퇴직을 응원하는 멋진 여자인 척 했었다. 친한 언니가 대화 중에 '너희 남편이 퇴직한 건 널 만나서가 아닐까? 다른 여자랑 살았으면 퇴직은 꿈도 안꿨을 걸?'이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에게 '꿈을 찾으라',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부추긴 게 나이기 때문이다. 정말 남편이 퇴직을 결정할 줄은 몰랐지만, 나는 그가 자신의 삶의 미션과 비전을 찾아 더 성장하기를 바랐다. 대기업 생산직으로서의 삶이 그의 꿈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여기저기 대기업에 원서를 넣었고, 그 중 합격한 곳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다른 인문계 고등학생들처럼 꿈이나 적성을 고민해 볼 기회 자체가 그에겐 없었다. 꿈과 적성은 접어두고 꽤 괜찮은 연봉에 자신의 삶을 맞춰 넣었다. 좋은 대기업의 일원이 된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배웠다.
어떤 게 내 적성에 맞을 지 수시로 고민하고, 주변에 질문 받던 내 고등학교 시절과 사뭇 달랐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끝없이 나의 적성을 물었다. 온갖 검사지를 했고,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했고, 친한 친구와 점심시간, 야자 시간에 학교 벤치에서, 운동장 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에 진학하고도 이 학과가 내 적성에 맞는지 되묻던 내 과거가 사치스러울 정도였다. 모두가 그 꿈대로 살고 있진 않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겐 그런 질문이 있었고, 그렇게 살 기회가 있었다. 그에게도 꿈이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묻고 싶었다. 결혼 후, '당신이 원하는 삶이 있다면 못벌어도 좋으니 해보라'고 권한 게 시작이었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우려와 달리 퇴직한 남편의 모습을 보면 나는 기쁘다. 이제 꿈을 찾아 자신의 일을 시작한 그가 자랑스럽다. 물론 경제적 변화가 있지만, 우린 잘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우린 서른이 넘어 결혼을 했지만 아무리 좋게 봐도 완성품이라고할 순 없었다. 더 만들어가야 할 게 차고 넘쳤다. 우리는 서로의 가능성을 믿고 응원한다. 물론 남편과 나는 모든 면에서 잘 맞는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의 성장을 응원한다는 큰 틀이 우리를 부부로 살게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서로가 무엇이 될 지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린 성장을 멈춘 어른이 아니다. 여전히 성장하고, 커나가는 대한민국의 장년층임을 자부한다. 이 글을 읽게 될 당신의 부부의 삶은 또한 어떠한지 궁금하다. 배울 것이 있다면 배우며 더욱 성장하는 부부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