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한 '친구 같은 딸'이 되지 못해 미안해.
엄마의 심장 시술기1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 혼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오랜만에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왜?"
엄마가 좀 아프다고 했다. 요즘 숨이 가쁘다고 하셨고 오늘 아침에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했다고. 심장에 문제가 좀 있다고 빨리 온 것이 다행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정신이 멍해졌다.
"수술까지는 아니고 시술이라고 했어. 시술. 걱정 마."라고 말하는 동생의 목소리가 아득히 들렸다. 그래, 시술. 수술은 아니니까. 시술이래도 몸에 무슨 기계를 넣는다고 했다.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미혼인 남동생은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엄마와 깊이 이야기하고, 엄마의 증세를 살피고, 엄마와 병원에 다녀오는 건 어느새 동생의 몫이 되어 있었다.
나는 먼저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몰랐다. 엄마와 동생은 늘 상황이 다 종료되고 나서야 나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지난 일처럼 알려줬다. 엄마가 감기에 걸렸었는지, 장염이 있었는지, 무릎이 아픈지, 어느 아줌마랑 사이가 안좋아졌는지, 요즘 우울한지, 운동화를 새로 사야하는지, 나는 늘 한 템포 늦게 알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엄마에게서 꽤 멀찍이 떨어져 있었나 보다. 예전엔 엄마가 내 단짝이었는데 이젠 남편,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이 당연해졌다. 엄마는 항상 자신보단 나를, 손자를, 사위를 먼저 챙겼다. '넌 애 키우는 것 하나로도 정신이 없을텐데.'가 엄마의 대표 레퍼토리가 됐다. 난 여전히 엄마 딸인데, 언제부턴가 엄마에게 나는 사위의 아내, 손주의 엄마가 되어버린 것 같아 속상했다. 결혼을 한다는 게, 내 가정이 생겼다는 게, 아이를 키운다는 게, 이런 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정에 오면 엄마와 동생이 손님맞이를 하듯 우리를 맞았다. 엄마는 인스턴트나 배달 음식을 먹는 일이 잦은 우리를 위해 집밥을 해 주었다. 평소 육아에 지쳤을 나와 남편을 대신해 아이와 노는 게 동생의 역할이었다. 엄마와 동생의 극진한 대우에 고마우면서도 가끔은 손님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속상했다. 남편과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엄마와 남동생이 우리 세 식구를 위해 이번 주말에도 최선을 다했구나 싶어 마음이 찡하곤 했다. 이제 우리 보내 놓고 엄마도 다리 좀 펴고 쉬겠구나 싶었다.
"엄마, 원래 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거랬어요. 우리 가면 세상이 다 조용할 걸? 우리 가면 이제 좀 쉬어요." 미안하다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게 다였다.
그러고보면 지난 주말에 엄마와 함께 있었는데도 나는 엄마의 증세를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엄마를 잘 관찰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난 좀 무심한 딸이었다. 지난 주말 친정 식구들과 함께 동백을 구경하러 갔었다. 남편이 앞장 서고 내가 그 뒤를 따랐다. 뭔가 이상해 뒤를 돌아보니 뒤따라 올라 오던 엄마와 동생이 멈춰서 있었다. 올라 오다 말고 둘이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 요즘 운동도 안 하시나 보네? 천하의 김여사가 이 정도에 힘들어하고."라고 말하니 엄마는 멋쩍게 웃었다. 엄마와 남동생을 두고서 아이를 무등 태워 올라간 남편을 금세 따라잡았다. 아이의 사진을 몇 장 찍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전화를 했다. 혹시 순환 열차를 놓칠까 표를 끊고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엄마의 답에 속이 상했다. '다음 순환 열차를 타면 되지, 왜 여기까지 와서 올라도 안 오느냐'고 골을 냈다.
그때도 동생은 엄마의 증상을 알고 있었다. 엄마가 계단을 오르기를 버거워하자 둘은 꽃구경을 포기하고 아래에서 쉬고 있었나 보다. 나만 아무것도 모르고 아이의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남편과 팔짱을 끼고 산책을 했다. 내려와 엄마에게 딸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신이 났었다.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니 세상 그런 속없는 딸이 없었다. 물론 알았다면 엄마를 그렇게 두진 않았겠지만, 미안했다.
이번 일도 함께 살고 있는 남동생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동생은 나중에 엄마한테 들을 때 놀랄까 봐 미리 말하는 거라고 당장 전화해서 아는 척은 말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왜 아픈데 말을 안하냐고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일단 아무 일이 없다는 듯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하셔?"
"아무 일도 없어. 왜?"
"아니, 엄마는 뭐하시나 해서."
"엄마 밖에 나왔어. 일 봐."
"응. 알았어요."
엄마의 '밖에 나왔어'는 전화를 받기 곤란한 상황이니 끊으라는 표현임을 안다. 엄마는 나에게 당장 아무런 이야기를 안 하셨다. 바로 물어볼까 했는데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있으려나 싶어 일단은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아무 일도 없어.' 가 마음에 남았다. 아무 일도 없긴, 무슨. 시술이 정해지면 말씀하시겠지만 당장은 내게 알릴 생각이 없으신 듯했다.
정신없이 내 새끼만 키우느라 엄마를 챙기지 못했다. 친구 같은 딸이 되려고 했는데 난 그러지 못했나 보다 싶어 속이 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밥을 먹다가 눈물이 나서 펑펑 울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