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엘 내다본께, 세상이 그리 곱드라.

엄마의 심장 시술기 2

by 캐롤

엄마는 끝내 심장에 자동 심장 박동기라는 기계를 달았다.

일주일 정도 숨가쁨이 있었고, 주무시는 게 불편하셨단다. 본인이 다행이도 스스로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하셨다.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날 일찍 검사 결과를 들으러 오라고 했다고.

퇴근길로 곧장 친정에 갔다. 엄마와 한 침대에서 둘이 누웠다. 엄마는 쌕쌕거리며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자는 척 했지만 나도 자다깨다 하다 새벽이 왔다. 밤 사이에도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았다. 겁이 났다.

엄마의 병명은 '완전방실차단'. 부정맥 중 하나이지만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당장 자동 심장 박동기를 가슴에 넣어 달아야 했다. 언제 돌연사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지인에게 부탁해 그사이 알아둔 서울에 대학병원 이름난 의사에게는 당장 시술을 받기 어려웠다. 의사가 유명할수록 예약 가능 날짜는 멀었다. 엄마는 하루가 급했다. 근처 대학 병원 응급실로 바로 들어가 입원을 했다.

엄마는 쌩쌩하게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왔는데 심박동 측정기를 달더니 간호사들이 분주해졌다. 시술은 바로 다음날 아침으로 정해졌다. 심박동이 40을 넘지 못해 계속 삐삑 경고음이 울렸다. 간호사는 나를 따로 불러냈다. 언제 심장마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또 돌연사 이야기를 들었다. 내게는 심박동측정기가 30 이하로 내려가는지 지켜보는 임무가 맡겨졌다. 그날 밤도 수치를 확인하느라 거의 자지 못했지만, 숫자가 눈에 보이니 마음은 훨씬 나았다. 의료진이 가까이 있다는 안도, 내일이면 시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엄마가 시술을 기다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인자 심장도 업그레이드가 되는 세상이다. 인조인간이 별 거냐.' 쓸데없이 말이 길었다. 긴장한 모양이었다.

시술을 끝내고 나온 엄마의 어깨는 온통 피범벅이었다. 막상 그러고 나온 엄마를 보니 조금 놀랐다. 또 그새 총맞은 독립 투사 같다며 엄마는 굳이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인제 어디 가서 몸무게를 묻거든 자동심장박동기가 10KG쯤 나간다고, 나는 새털만치 가볍다고 우기겠다고도 했고, 인자 흉이 생겨서 애인한테 차이면 어떡할 거냐고도 했다. 계속 '최신식 인조인간' 타령을 했다.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엄마는 밤새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부분 마취로 한 수술이라 수술실에서 잠들어있던게 아니었다.

'죽으믄 그만이지 하더만, 내가 거기서 발발 떨었는갑다.'하는 엄마가 짠했다. '그으럼, 엄마. 우찌 보면 맨정신에 칼맞은 긴데.' 하니 엄마가 웃었다. 엄마는 간호사를 불러 진통 주사를 더 맞고서야 새벽녁에 스스르 잠이 들었다.

다음 날부턴 걷고 운동을 해야 했다. 엄마는 수술 부위를 손으로 감싸고 걸었다. 걸을 때마다 수술 부위가 흔들리면 통증이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한 손을 가슴께에 올리면서, '내가 이리 조국에 충성하는 사람이여.'했다. 그러고 보니 흡사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듯했다. 엄마가 두 손을 동시에 가슴께에 올리면서 살포시 앉거나 섰다. 내가 "고개 숙이고 앉는 폼이 영 얌전허네."하고 놀렸다. "가시나가 엄마를 놀리제." 하더니, 금세 "니 엄마, 새색시 안같냐." 하셨다.


엄마는 일주일을 가슴을 부여잡고 있고, 또 일주일을 코로나에 시달리고서야 방문을 나설 수 있었다. 퇴원을 하고 딱 일주일 뒤, 엄마는 코로나에 걸렸다. 몸살과 목감기로 고생을 꽤 했다. 평소 답답한 걸 못견뎌 하는 엄마가 영상 통화를 할 때마다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연세가 있으시니 걱정을 많이 했는데 고생은 하셨지만 무리 없이 나았다. 감사한 일이다.

"이제 좀 살만하니께, 코로나에 걸리고 난리여. 이걸 안고쳐놓고 걸렸으믄 멋도 모르고 죽을 뻔 안했냐."

"그니까 엄마, 인생은 타이밍이지. 간발의 차이로 사람은 죽고 살고 하는 거지."

"긍께, 내가 끙끙 앓고 두 주만에 베란다에 나가본께, 벚꽃이 흐드러지게 안 폈냐, 그게 그리 허옇게 핀 지도 모르고 내가 그리 아팠당께. 밖엘 내다본께, 세상이 그리 곱드라."

그 전화를 끊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엄마는 모를 거다. 견뎌준 엄마가 너무 고마워서, 모든 게 이렇게 잘 지나가줘서, 따뜻한 엄마를 여전히 만져볼 수 있어서, 엄마가 다시 벚꽃을 볼 수 있어서. 주체할 수 없게 한참을 펑펑 울고나니 마음이 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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