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체력'이라는 책이 한참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어떤 편집자가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이었다. 제목만 듣고 편집자가 낸 책이라기에는 꽤 색다르다 싶었는데, 유튜브를 구경하다 세바시에 나온 저자를 보게 되었다. 그녀의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아주 작고 아담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마녀니까 여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조그만한 여자라고?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진짜 조그만했다. 160이 안될 것 같고, 체구도 작아서 덩치 큰 초등학생 남자애만 하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철인 3종 경기를 한다고? 그녀의 세바시 강연이 괜찮았는지, 그 체구에 궁금증이 일었는지, 나는 그 책을 샀다.
책은 전체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여기 저기 밑줄도 쳐가면서 열심히 읽었던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 빌려준 건지 보이지 않는다. 당시 책을 읽고 여기 저기에 추천을 하고 다녔었다. 누군가의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겠지. 오늘 출근하면 사무실에 다른 사람들 책상 위를 쓱 살펴봐야겠다.
내가 이 책에 매료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직업이 편집자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 스스로도 지적 성장에 관심을 두었지, 평소 체력에는 무심했다는 것이다. 자신은 사무직이니까, 나는 머리 쓰는 일을 하니까 체력이 약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긴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성향이 뚜렷했다.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나의 내적 성장이 요즘 뒤떨어진다고 느껴지면 크게 상처를 받고 노력한다. 하지만 체력이 뒤지는 것은 쉽게 용납한다. 나는 원래 그래, 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건 체력을 넘어 외모에도 연결되었다. 단정하고 깨끗한 옷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쇼핑을 다니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피부나 몸매를 가꾸는 것에도 보통 여자들보다 관심이 덜했다. 내 매력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다녔다.
그래도 20대에는 어떻게 잘 버텼던 것 같다. 그 나이가 주는 풋풋함이 있었고, 몸매도 지나치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30대 초반까지도 어떻게 잘 지내왔다. 그런데 이제 4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다르다. 다르다는 게 온 몸으로 느껴진다. 노력하고 운동하지 않으면, 살이 계속 찐다. 그냥 밥만 먹어도 살이 찐다. 몸매도 여기 저기가 처진다. 서럽지만 이건 진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남들도 다 드는 나인데 별 수 없지. 내 매력은 여전히 내면에 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사무실에 여자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외투를 바꿔 입어보고 있었다. 여자들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나는 몸에 딱 달라붙는 니트에 외투를 걸쳐 입고 있었다. 외투를 바꿔 입어보자니, 얇은 니트 하나만 달랑 입은 꼴이 됐다. 너무 붙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여자들끼리니까 뭐 어떤가 싶었다. 그런데 친한 언니가 쓱 옆으로 오더니, 말했다.
"너, 나랑 이 운동 좀 하자."
"응? 무슨?"
"가슴 업 하는 운동."
"하하하, 뭐?"
"너 해야 해, 지금. 나 요즘 하니까 좀 달라지더라 확실히."
갑자기 시작된 가슴 이야기에 모두의 화제는 금세 또 가슴, 몸매, 근력 운동으로 넘어갔다. 모두 남자직원들이 들을까, 목소리를 줄이면서도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순간 나는 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옷을 입었는데, 속옷도 입었는데. 내 가슴이 처진 게 보인다고? 가슴이 요즘 처지기 시작했다는 건 샤워할 때 느꼈지만, 그건 나만 아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속옷을 입으면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닌가? 가슴이 처져보인다는 건 살이 쪄 보인다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뭔가 더 굴욕적이었다. 내가슴이 처졌다는 걸 다들 보고 안다고? 오마이갓. 그건 아니지. 살이 쪄서 붙는 옷을 못 입는 날보다, 가슴이 처져서 붙는 옷을 못입는 날이 먼저 올 줄이야. 이건 좀 충격적이다.
그리고 나에게 이 조언을 한 언니도 평소 외모에 관심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언니도 집에서 가슴운동을 따로 한다고? 나빼고 다들 그렇게 관리를 하고 있었다는 걸까? 나만 너무 순진했던거야? 다들 안하는 척 하면서 다 하고 있었던 거야?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고 보니, 외모 가꾸기에 지나치게 무심했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항상 입는 바지를 입고, 항상 입는 외투를 입는다. 저 멀리 회사 복도 끝을 지나가는 나를 보고도 저게 걔구나, 알 수 있게. 머리도 단발로 잘라 항상 단정하게 다녔다. 화장도 미니멀하게. 아, 언제부터였지. 이러고 다닌 게.
그날 밤부터 혼자 시간이 날 때마다 가슴 운동을 시작했다. 남편이 샤워하러 갈 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를 놓치지 않는다. 가슴이 처져서 가슴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싫었다. 이런 건 보이지 않을 때 몰래 샤라락 해야 하는 법이다. 뭔가 아령같은 걸 들고 해야한다던데, 마땅한 건 없고 생수병을 들고 운동을 했다. 그런데 어제 과일을 먹는데 2살짜리 딸래미가 생수병을 들고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푸하하. 애 앞에서는 진짜 뭘 할 수가 없다. 남편이 의아한지 딸을 본다.
"쟤 계속 왜 저러지?"
"무거운 거 들 줄 안다고 자랑하나보지. 칭찬해줘."
"아이고, 우리딸 이제 생수병도 드네. 다컸다."
아, 인생이 코메디인 것을. 미안하다 딸. 어쩌겠니. 당분간은 너와 나만 아는 비밀로 하자. 니가 아직 말을 잘 못해 너무 감사한 오늘이다.
* 여러분도 쉿!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