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나'와 '말하는 나'

키보드 앞에 앉아서 멍 때리며 드는 생각들

by 캐롤

스타벅스 구석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앉아 멍을 때린다. 커피를 마셨다가, 화장실에 다녀왔다가, 또 멍을 때리다가 사람들을 구경한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러고 앉았는가.

조금 재수 없는 말이겠지만 나는 꽤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글을 쓰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글을 쓰겠다고 반년이나 휴직을 내놓고 이렇게 카페에 앉아있는 게 문제다. 왜 나는 글을 쓰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가. 멋져 보이는가. 나 스스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싶은가. 작가님 소리를 듣고 싶은가.

이런 내가 너무 답답해서 진짜 진지하게 딱 까놓고 나와 대화를 해볼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지 멋져 보이거나 나를 포장하고 싶거나, 작가님이란 호칭이 갖고 싶어서는 아니다. 단지 쓰고 싶은 것이다. 쓰는 사람이 되는 것, 쓰는 근육을 갖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 하나다. 꾸준히 쓰는 것.

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다. 너무 하고 싶은데 되지가 않으면 이만치 답답한 것이 없다. '그럼 그냥 쓰면 되잖아!'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게 안된다고!'라고 답하고 싶다. 노래가 부르고 싶으면 노래를 부르면 되고, 춤을 추고 싶으면 춤을 추면 될 일인데 왜 글쓰기는 그리 되지 않는가. 그런데도 난 왜 쓰려고 하는가.

나는 나를 깊이 들여다본다. '말을 하는 나(이하 '말나')'는 참으로 뭐든 잘 해낼 수 있는 똑부러지고 위트가 넘친다.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을 본 적 있을 것이다. 남들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발표하고, 무엇이든 물어보면 잠깐 생각하고도 한참 동안 고민한 적이 있는 듯 척척 술술 이야기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다. 어쩜 저리 말을 잘하냐는 말은 만 4세부터 지겹게 들어왔다. 이젠 말로 먹고 살기까지 한다. 아마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일이라도 어디든 나가 '강의'를 하게 되었다고 한대도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하지만 '말나'는 실수 투성이고, 사실은 그 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고, 경솔한 표현과 생각으로 남에게 상처를 많이 주기도 한다. 남들 앞에 서서 '말나'가 이제껏 한 실수와 무례를 모두 나열하자면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할 것이다.

이에 반해 '글을 쓰는 나(이하 글나)'는 무엇이든 조심스럽고 한참을 고민하다 한 줄을 쓰고 다시 지운다. 답답하기 짝이 없고,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평소의 유창함은 다 어디로 가는 건지 의아할 정도다. 단지 말이 글로 바뀌었을 뿐인데 완전히 새로운 자아로 바뀐다. 아마도 말은 녹음을 하지 않는 이상 허공으로 날아가지만 글은 남는다는 점이 내게 부담을 주는 모양이다. 하지만 가끔 시간이 지나 '글나'의 글을 읽으면 깜짝 놀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내가 글을 쓰기 전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가. 뭐든 쓰기 시작하면 '글나'가 기지개를 켜고 앞으로 나선다. 그럼 글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나고 이것들이 연결된다. 글나는 끝내 어떤 의미를 만들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글을 다 적고 나서야 다시금 '말나'가 고개를 비쭉 내민다. 자신이 상상도 못 할 것을 적고만 '글나'가 신기하기 짝이 없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이 아니라 편한 '말'보다 힘겨운 '글'로 표현한 내 모습이 더 낫다는 소리다.

나는 그래서 언제부턴가 '글나'가 좋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나를 '말나'로 기억하겠지만, 나는 그런 내가 불편하다. 오히려 나는 꼭꼭 숨어있는 소극적이기 짝이 없는 '글나'를 믿는다. 하지만 '글나'를 만나려면 먼저 어딘가에 앉아 키보드나 연필을 만지작거려야 한다. 그것도 한참은 소득이 없이 멍 때려야 한다. 이건 주문을 거는 것과 같은 일이다. 주문을 걸지 않으면 마법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주문을 걸지만 마법이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많은 경우에.)

'글나'를 보면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다. 조금 더 어른 같고, 조금 더 따뜻하다. 하지만 일상에 치이면 '글나'를 만날 기회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말나'는 언제나 유창하게 남들을 속인다. 위트 있고 매력적으로. 이제 나는 가끔은 그런 '말나'가 지긋지긋하기도 하다. 그만 쫑알거리라고, 그 입, 다물라, 다물라.

이제 나는 나의 정체성으로 '글나'를 앞세우고 싶은 모양이다. 물론 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일상적인 대화 수준이 아닌 깊이 있는 생각은 가볍게 말로 시작하고 싶지 않다. 무슨 주제든 글로 써보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달라진다. 그때부터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번은 글로 써봐야 그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게 생긴다는 것을 이제 안다. 글쓰기는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어보고 싶은 나의 노력인 셈이다.

나는 오늘도 카페에 간다. 입을 꾹 다물고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영 답답하면 책을 읽는다. 오늘도 부끄러워 자꾸만 뒤로 숨는 '글나'를 잘 다독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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