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이에 다른 회사로 옮겨왔다. 회사를 옮기니, 내 입양 공개는 다시 리셋되었다. 회사 사람 대부분이 내가 입양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걸 갑자기 말할 수도, 말할 필요도 없으니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내 바로 옆에 앉은 딩크족 동료와는 어쩌다 난임 이야기를 하다가, 또 친해진 부서장과는 매일 점심시간 후 산책에서 깊어진 수다 끝에 입양을 말했다. 이렇게 알아가는 사람이 늘어가곤 있지만 그게 전부다. 요즘 세상이 그런 건지, 다들 모른 척 해주는 건지 내가 입양했다는 사실은 그리 번지는 기세가 아니다. 요즘 나는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같은 사무실을 쓰는 직원이 둘째를 임신을 했다. 아이들도 동갑이라 평소 편한 마음이 드는 동료다. 임신 5개월이 넘어서자 눈에 띄게 배가 불러왔다. 같이 이동을 하는 중에 그녀의 배를 보며 말했다.
"너무 이쁘다. 자기야. 예전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임신한 배는 참 예쁘네. 이런 말 어떨지 모르겠지만."
"둘째 가져. 자기가 나보다 어리지 않아? 첫째 배불렀을 때는 이런 생각 안 했지? 둘짼 또 달라."
"나는 이렇게 배불러본 적이 없으니 모르지~"
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녀는 "으이구~"하고 내 어깨를 치곤 웃었다. 실없는 농담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또 이런 적도 있다. 요 근래 살이 좀 빠졌더니 화장실에서 만난 다른 동료가 "요새 살 빠졌지?" 하길래, 미련하게 남은 내 뱃살을 툭툭 치면서 "그래도 이건 절대 안 빠지네?"했다. "원래 그건 안 빠져. 그럴거면 애를 안 낳았어야지~" 하길래, "이 배는 애를 안 낳았는데?"하고 웃었다. 내 말에 조금의 동요도 없이 그녀는 "쯔쯧, 둘을 낳아봐야 저런 소릴 안 하지~"하며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변소칸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내게 다섯살짜리 딸이 있는 걸 아니까. 아마 그녀들은 내가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겪지 않았다고는 상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 답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주말에 점심을 먹으면서 친한 언니에게 이런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니, 짖궂기도 하다는 듯이 웃으며 '넌 그럴 때 당황스럽지도 않니?' 하고 물었다.
"당황스러웠지. 처음엔. 제왕절개로 낳았냐고 물었을 때, 임신했을 때 몇 키로나 쪘느냐고 물었을 때,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진 않았냐고 물었을 때. 첨엔 그때마다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당당하고 싶어서 입양을 밝혔는데 어느 순간 그것도 너무 tmi가 아닌가 싶더라고. 상대는 가볍게 공을 던졌는데, 내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치는 느낌일 때도 있고. 이제 나도 4년차잖아. 이렇게 능청을 부릴 여유가 생겼달까?"
아이를 입양에 당당한 아이로 키우려면 입양을 당당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스스로 균형감을 찾아가고 있다. 비슷한 상황에서 이전보다 유연하게 대처해가는 이 변화가 아이에게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