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시 취침, 5시 기상이 시작되었지만, 저녁 약속들은 계속 이어진다. 친한 사람과의 식사, 계모임, 취미 동아리 모임 등. 사실 아침에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일-그러니까 운동, 글쓰기, 공부 등-은 모두 마감지어두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단지, 나의 10시 취침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가장 걱정이다.
모든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
가장 첫 문제는 계모임이었다. 내 또래의 직장동료일곱이 함께 한다. 직장동료이지만 이제 친구나 다름 없다. 술은 마시지 않지만 밥을 먹고 커피숍으로 간다. 우리의 수다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수다가 시작되면,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이 '곧 문 닫을 시간이에요.'해야 모임이 끝난다. 커피숍이 10시에 마치느냐, 11시에 마치느냐에 따라 모임의 마감시간이 정해질 정도다. 모두 신혼이거나 미혼일 때 시작된 모임인데 지금은 나를 포함한 2명을 제외하고 모두 육아 중이다. 언젠가부터 수다의 방향이 바뀌었는데, 육아의 고충과 육아정보 공유가 주를 이룬다. 나는 여전히 이 친구들을 매우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요즘은 모임에 나가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육아 정보는 물론 들어두면 미래에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의 내 귀에는 하나도 의미있게 들리지않는다. 젖병의 브랜드와 수많은 기저귀들, 아이들의 수면텀을 듣는다고 기억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육아를 돕지않는시댁이나 남편 험담을 들으면서 공감해주는 일도 긍정적인 사고를 훈련하고 있는 나에게는 조금 버겁다. 참석하면 11시가 넘어야 돌아오게 될텐데, 다음 5시 기상에도 크게 문제가 생긴다.
너무 매정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이번 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모임을 포기하고 5시 기상 습관 굳히기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친구들과 다 함께 만나는 자리를 포기하는 일은 아쉽다. 하지만, 내가 지금 무엇에 열중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포기도 필요하다. 이 친구들을 일대일로 만나거나, 두 세명이 만나면 또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여러 명이 함께 만나서는 말하지 않는 깊은 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임을 가지 않고, 따로 세 번의 개별적인 만남을 가졌다. 독박 육아하는 친구의 집에 찾아가 아이를 봐주면서 이야기를 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친구와 유모차를 끌고 커피숍에서 만나 친구의 새프로젝트 구상을 돕기도 했다. 주말에 아이를 신랑에게 맡기고 자유시간을 갖게 된 친구와 지역 걷기 대회에 참가해 걸으며 친구와 나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대화도 나눴다. 시간을 더 많이 쓰게 된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만남의 질이다. 더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진짜 만남이다.
나는 이후에도 이 모임을 유지할 생각이다. 잠시 모두 육아홀릭 중이라 모임의 흐름이 바뀌었지만, 곧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육아를 하게되면 또 모임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변할 것이다. 나는 모임 참석과 개별적 만남을 적절히 배분해가며 이 인연들을 유지할 생각이다.
저는 9시엔 집에 가야 해요.
함께 일을 하게 된 직장 동료와 동네 커피숍에서 만나 업무에 대한 회의를 하기로 했다. 회사 안에서 하자니, 기분이 나지 않아 근처 커피숍으로 장소를 정한 것이다. 각자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만나니 7시가 조금 넘어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둘이 만나 커피숍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9시 귀가를 선언했다.
"제가 요즘 하는 게 있어서, 9시엔 집에 가야 해요."
우리에겐 2시간 밖에 여유가 없었는데,회의는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8시 40분에모두 끝났다. 나머지 20분을 서로의 회사 생활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정확히 9시에 우리는 커피숍을 나섰다. 평소 같으면 중간 중간에 여러 잡담을 섞고, 회의는 갈피를 잡지 못해 10시가 되어도 '내일 만나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텐데, 마감 시간이 정해지니 오히려 회의 진행이 매끄러웠다. 나 역시 말은 했지만 과연 9시에 일어날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마음 가볍게 모든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또 부서 회식을 잡을 때, 나는 미리 '그날 시간은 되는데 9시엔 집에 돌아가야 해요.'라고 선언했다. 대부분 아예 참석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9시엔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밥을 먹고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조금 시작할 때쯤 9시가 되었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이런 일이 처음이라 그런지 '무슨 일이 있나 보다.'정도로 생각해주는 눈치였다. 회식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 감정이 상하지도 않았다. 단지 공손한 표정과 말투가 필요할 뿐이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먼저 일어나 봐야겠다,는 말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다들 순순히 나를 놓아 주었다. 나는 9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와 샤워를 하고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나는 회사에 일찍 출근했다. 5시에 기상하니, 일찍 출근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대신 출근한 모두에게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커피를 권했다. '어제 언제까지 놀았어요?, 재미있었겠네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동료들의 뒷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그들은 내가 없어도 아주 즐겁게 회식을 마무리했다.
일단 이번 글에 반발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생에서 A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B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무엇이 더 의미있는가를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계획된 내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게 된다면, 그건 충분히 의미 있거나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라고 예측되어야 한다. 무조건 내 시간을 흥쾌히 내주지 말라.
내가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했다면 모임에 앉아 있으면서 끝없는 육아 이야기에 정신이 혼미해지며 '왜 이런 이야기를 듣느라, 내 습관을 망가뜨리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곧 그 모임에 온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만약 즐겁지도 않은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왔다면, 자신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라.)
'내 습관을 유지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으라. 그리고 포기한 것을 대신할 방법을 강구하라.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다.
내 시간은 내가 계획한 대로 움직인다. 내가 내 시간을 계획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내 시간을 마음껏 가져다 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해진다. 물론 술을 마시는 회식이 일상적인 직장이라면, 내 방식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직장마다의 분위기는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한 번쯤은 도전해보라고 말해보고 싶다. 어느 회사건 한 번은 가능하다. 한 번 시도해보고, 분위기를 살펴보자. 다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면 회식이 잡히는 날은 어쩔 수 없이 늦게 잘 수 밖에 없다. 회사생활은 중요하니까. 하지만 한 번 시도가 나쁘지 않았다면, 또 한 번 도전하라. 그들은 당신이 시간을 미리 계획해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당신의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모임 시작 전 미리 9시 귀가를 말해두는 것이다. 식사후 2차에 도착해 9시 귀가를 밝히면 그때는 이미 늦다.
5시 기상은 10시 취침과 세트다. 10시 취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강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