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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Dec 01. 2020

직장만 다니기도 버겁다고 말하는 삶.

  글이 밀린 동안 내 삶도 잠시 밀려있었다. 그러니 글도 쓸 수 없었다. 생각보다 글을 쓴다는 건 삶의 많은 영역이 도와줘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4월부터 여름이 올 때까지 나는 꽤 잘 했다. 출근을 하지 않는데도 거의 5시 전후로 일어났다. 운동을 하고, 씻고 일기를 쓰고, 이런 식이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런데 7월쯤부터 균열이 조금씩 생겼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시작하는 때였다. 아이가 기관에 가면 내 시간이 더 많아질 것 같았는데, 9월 복직을 앞두고선 더 놀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이제 자지 못할 늦잠도 좀 실컷 자고, 사람들도 만나고, 늦게까지 유튜브도 챙겨 봤다. 

  그러다 9월 복직이 시작되었고, 나는 워킹맘이 되었다. 매일 늦지 않게 챙겨 하루를 시작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직장 생활도 잘하고 있다. 퇴근해 와선 아이와 놀고, 밥을 먹고, 씻고 씻기고 나선 잠든다. 처음엔 아이가 자는 시간에 맞춰 잠을 자면, 다시 5시쯤 기상하게 될 줄 알았다. 내 수면시간은 7시간쯤이니까. 

  그런데 5시쯤엔 꼭 눈을 한 번 뜨고 시계를 확인하긴 하지만, 일어나지지를 않았다. 어젠 힘들었으니까, 밤새아이가 뒤척거려 나도 잠을 못잤으니까, 지금 일어나면 하루종일 피곤해 일에 방해가 될 테니까. 나에게도 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은 있었다. 하지만 6시 넘어 일어난 아침은 항상 공허했다. 바빴지만, 뭔가 빠진 느낌이 있었다. 

  난 그러니까 그냥 직장만 다니고 있었다. 더이상 운동을 하지도, 글을 쓰지도, 책을 읽지도 않는 삶. 직장만 다니기도 버겁다고 말하는 삶. 그러면서 만족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조금씩 우울해졌다. 유튜브를 보면서 우울했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우울했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고 뒤척이며 우울했다. 쭉 이렇게 살게 될까봐, 너무 겁났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몰랐다. 몇 번쯤은 정신을 차려보겠노라고 운동을 나갔다 왔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다시 연달아 운동을 나가지는 않았다. 11월 초인데도 새벽은 벌써 겨울이었다. 밖은 너무 추웠다. 역시 기분전환엔 청소라고 청소를 시작해보았다. 내 마음처럼 집은 무너져있었다. 여기저기를 닦고, 버리고, 물건들을 제자리로 옮겼다. 하지만 몇 시간 후면 집은 다시 무너졌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소파 아래에 가 웅크렸다. 

  일어나고 싶고,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아는데 일어나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일어나냐고 묻고 싶었다. 다들 냉정한 눈으로 '그냥 니가 일어나, 니가 해야 할 일이야.'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혹은 다정한 눈빛으로 '꼭 일어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누워 있어, 다들 그래.' 하고 말했다. 답답했다. 

  친한 언니에게 새벽에 일어나지 못해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워킹맘은 그런거라고, 원래 그렇게 힘든 거라고 말해줬다. 니가 지나치게 너에게 높은 기준을 가지는 거라고, 못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고도 했다. 그 말이 '넌 그렇게 니가 대단한 줄 아니?, 그냥 평범하게 살아'로 느껴졌다. 물론 나를 위로하느라 한 따뜻한 말임을 알지만, 난 다르다고 난 해낼 거라고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그러고도 난 한참을 잠겨있었다. 몇 번은 허우적대다가 수면 가까이 나오고 숨을 몰아쉬었지만, 또 저 밑에서 누군가가 내발을 잡아당겼다. 그럼 또 여지없이 숨을 삼키고 물밑으로 끌려내려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내가 정말 나를 구원하게 될까. 다시 예전처럼 살고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조금 일찍 일어났다. 물론 요근래 이런 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된 건 오랜만이었다. 계속 글을 쓰고 싶다. 왜? 냐고 물으면 모르겠다. 이제. 처음엔 좀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한데. 이젠 그냥 써야 마음이 편하다. 근데 시작이 힘들다. 이 글이 날 다시 수면 위로 올려놓아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물론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만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난 그것만으로 버겁다고 말하고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내는 것이 더 우울했다. 뭔가 해야만 했다. 이건 아마도 5am을 살아봤기 때문일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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