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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Dec 02. 2020

움직이지 않아도 그것으로 당신은 이미 해냈다.

삶의 절벽에서 벗어나는 당신을 응원하며.

  겨우 40분정도를 먼저 일어났을 뿐인데, 어제 하루는 달랐다. 일어나서 한 일이라곤, 물을 마시고, 남편과 몇 마디를 나누고, 브런치에 글을 하나 저장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루종일 뭔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이제 다시 5am으로 돌아가는거야!, 오늘 아침엔 글도 시작했잖아! 


  이런 기대가 하루종일 사람을 들뜨게 했던 것 같다. 그게 뭐 대수냐고 할 만큼 별 일 아니라면, 별일 아닌 일이 소중할만큼 나는 5am으로 돌아가는 게 절박했다. 맞다. 절박하다. 그럼에도 난 오늘 아침에도 5시에 일어나지 못했다. 절박하다며! 왜 못일어나는거야! 왜 움직이지 못하는거야. 이런 내가 답답하다. 그런데 잘 안된다. 진짜다. 이건 내가 노력하지 않는 게 아니다. 미치도록 잘 안된다. 사실이다. 


  예전에 누군가의 단편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것도 유튜브에서였는데-난 요즘 유튜브 중독이다- 하하하. 화면엔 어떤 여자가 경사가 아주 높은 절벽에 등을 기댄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시멘트 절벽 같았는데, 꼭 누가 만들어놓은 인공절벽같았다. 깎아내린듯한 미끈한 절벽은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쓸려내려갈 것만 같았다. 그 여자는 몸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위로 올라가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뭔가 위로 올라가면 그나마 살 길이 있는 듯 보였다. 그녀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손바닥이 시멘트에 쓸려 벌건 피가 올라왔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는데 간간히 쓰윽-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려왔다. 그 자리엔 아래로 쓸려간 핏자국만이 남았다. 유튜브를 보다가 무심코 누른 영상이었는데 저게 뭔가 싶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봤다. 그녀가 발을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한번씩 미끄러질때마다 내가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이대론 가망이 없어보였다. 혹시 그녀가 마음을 놓고 절벽 아래로 미끄러져버리면 어쩌지, 두려웠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절벽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올라간 걸까, 미끄러진 걸까. 잠깐 고민하다가 난 또 다른 유튜브 영상으로 넘어갔다. 


  나는 계속 내가 미끄러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영상을 보던 그 순간에도. 계속 미끄러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답답하고 두려웠다.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이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는게 아니었다.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절벽에서 곧 미끄러져 내려갈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게 내 상태였다. 

  

  나는 그 절벽을 천천히 조금씩 손이 까지고 온 몸이 으개지면서 올라왔던 모양이다. 이제서야 눈물이 터지고, 서럽게 우는 중이다. 지금 울 수도 없이 절벽에 선 당신이 있다면, 들어달라. 마지막까지 놓지 말아달라. 당신을 붙잡고 서있으라. 움직이지 않아도 그것으로 당신은 이미 해냈다. 그리고, 내가 당신을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 서럽게 울어댈 당신과 함께 울어주고 손을 맞잡아 주겠다. 

 

  난 오늘도 한 시간을 더 뒤척이다 일어났다. 그래도, 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 정도를 얻었다. 그래서 어제 썼던 글을 한 번 쓱- 보고 그냥 발행해버리고 이 글을 쓴다. 글이 완벽히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그런 글은 없다. 그냥 그렇게 해야 내가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못난 글이라도 써 올려야, 살아진다. 살아낼 수 있다. 


 * 내가 말한 단편 영화는 인터넷에 '단편영화, 우울증, 절벽'이라고 검색하니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커브curve, 유튜브에 영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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