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자살시도를 했었다. 가장 마지막에 했던 통화에서 후배의 우울함을 느끼긴 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고, 쉽게 위로하기도 힘든 일이 있었다. 충분히 우울할 시간들이었다.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웠다. 혹시 상처가 될 말을 하게 되진 않을까, 되도록 말을 아꼈다. 마지막 전화 통화 후 걱정이 남아 며칠 뒤 톡을 보냈었다.
'언니가 연휴 지나면 한 번 갈게.'
평소와 달랐다. 카톡에 그렇다 할 답도 없는 아이는 아니다. 사는 곳이 달라져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한 시간은 운전을 해야 했다. 걱정스러웠지만 조금 시간을 두고 보는 편이 나을 듯했다. 뭔가 신경 쓰이는 마음에 기프티콘으로 커피와 케이크를 보냈다. '주말에 남편이랑 먹으러 가서 기분전환 좀 해'라는 메시지와 함께. 그래도 곧 만나러 갈 거니까, 이 정도면 됐지 싶었던 것 같다. 기프티콘을 보내고나니, 마음이 좀 편했다.
그리고 명절 연휴가 지난 후 전화가 왔다. 안그래도 이제 슬 연락을 해볼 참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후배의 남편이었다. 후배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힘든 상황이 있었고, 우울해할 거라곤 생각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전화를 끊고 멍해졌다.
그 후배와 이후 가끔 편지를 주고받는다. 후배는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주려는 가족들에게 드는 죄책감과 미안한 감정에 대해 썼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도 했다. 자신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존재가 된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 글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누구나 힘들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할 순 있어도 자기라면 절대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단언하는 사람들과는 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 그런 사람은 정말 오만한 사람 아닐까?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야. 그건 알 수 없는 거지.
네 주변에 남은 사람들이라면 모두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을 거야. 그렇게 결심하고 혼자 거실에 앉아있는 너를 상상해봤어. 넌 그때 늪에 빠진 거야. 아무리 너 혼자 나오려고 발버둥 쳐도 나올 수 없었을 거야. 그러니 네가 뭘 할 수 있었겠니. 그때 네 곁에 누군가가 니 손을 잡고 끄집어 올려줬어야 하는 거야. 그게 나였을 수도 있었겠지. 아님 니 옆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 중 누구 하나라도. 늪은 그렇게 빠져나오는 거야.
그게 꼭 나여야 했던 건 아니겠지만, 너에게 왜 바로 가서 커피 한 잔 하지 못했을까, 왜 너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길 겁냈을까. 니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좋았을 텐데. 그때 너에게 바로 가지 않았던 날들을 몇 번이고 후회했어. 내 마음도 꽤 오래 지옥 같았어. 네가 그런 결심을 할 때까지 널 방치한 미안함 때문에 말이야. 모두들 그 순간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왜 네게 달려가지 못했을까, 왜 널 혼자 뒀을까.
그래서 모두 너에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미안했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널 끄집어 올려주는 손이 되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혼자 외롭게 둬서 미안했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 손을 잡아.'
얼마 전 미혼인 직장 동료가 나에게 결혼이 연애보다 나을 게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런 질문을 한 그녀의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남자 친구는 내가 늪에 빠지면, 손을 잡아주겠지만 너무 깊어지면 손을 놓을 수도 있지. 자기도 같이 빠져 죽을 순 없잖아.
근데, 남편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목숨 걸고 날 잡아당기는 거야. 부부는 삶을 공유하거든. 내가 늪에 빠지면, 그건 그도 늪에 빠지는 거야. 그러니까 목숨 걸고 잡아당겨야지. 그게 부부야. 난 그게 좋았어."
후배의 남편은 지금 늪에 빠진 아내를 목숨 걸고 잡아당기고 있다. 물론 그녀의 슬픔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 순간이 있었지만, 그건 그만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이제 그녀가 늪에 빠져있다는 것을 명확히 안다. 여전히 괴로운 그녀의 삶의 가장 최전방에 서 있다. 언젠간 그의 손이 그녀를 끄집어 올려낼 것이다. 같이 늪에서 살게 될지언정 그가 그 손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는다.
가끔 자신이 괴롭다고 느낀다면, 자신이 늪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늪은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다. 남편이 아니더라도, 가족, 친한 친구를 불러 손을 잡자. 기꺼이 당신을 잡아당겨줄 것이다.
자신의 주변에 늪에 빠진 사람이 있는지 사려 깊은 시선으로 살피자. 그리고 늦지 않게 손을 잡아주자. 당신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가 당신의 시야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