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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Dec 01. 2021

하루라도 욱하지 않았으면(2)

2. 이상한 건 아이가 아니라, 나다.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최근 시작한 드라마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보는 내내 느린 전개와

등장인물들의 성격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다.

자꾸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르고,

사건의 결론이 나기를 기다렸지만

등장인물들이 가진 비밀을 종영까지 끌고 갈 것처럼 보였다.


답답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tv를 끄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쌓아둔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갰다.

청소기가 말을 안 들어서 머리카락들이 제대로 빨려 들어가지 않았고,

그릇에 들러붙은 밥풀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빨래를 개는데 먼지를 왜 이렇게 많이 나는지 짜증이 났다.


하원 시간이 다가와 나갈 채비를 하였다.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집을 나섰다.

낮잠시간에 잠든 아들은 하원 시간까지도

내리 자고 있었다.

요즘 자꾸 새벽에 깨서 놀다가 밤을 꼴딱 새우고 어린이집을 가는 바람에 이런 불상사가 생겼다.


‘하. 또 안고 가야 하나.’


두꺼운 패딩을 입은 아이가 자고 있으면 안고 가는 것이 두 배로 힘들다.

안고 가는 중에 발버둥을 치며 울고 불고 내려달란다.

막상 내려주면 주저앉아서 눕고 싶단다.


“화창아, 여기서는 잘 수 없어. 집에 가서 자자.”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어휴, 진짜!”


아이와의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집에 도착해서도 옷을 벗지 않겠다고,

손을 씻지 않겠다고, 밥을 먹지 않겠다고,

tv를 보고 싶다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짜증을 내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나대로 화가 나서 하루 종일 소리를 질렀다.

“그만 좀 해!”, “하지 마!” “안 돼!”

평소에는 이런 부정적인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도 않고,

화가 난다고 소리 지른 적도 별로 없었는데

귀신에 씐 사람처럼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다 드라마의 한 등장인물이 떠올랐다.


‘나 설마, 저 사람을 따라 하는 거야?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것 같다고 욕했던 저 사람을?’


충격적이었다.

평소에도 감정이입이 잘 되는 편이었지만,

아이 앞에서 분노조절장애 역할을 하고 있었다니.


순간, 아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내가 소리 지르면 놀란 표정을 짓던 아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분노와 호통에 반응이 없어졌다.

‘엄마가 또 소리를 지르는구나.’ 하던 아이의 표정.

내가 아이의 하루를 망쳤다 싶어 자고 있는 아이에게로 달려가 손을 꼭 잡고 이야기했다.


“엄마가 미안해.”


정말 이상한 하루를 보내고, 곰곰이 생각했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되짚어보며

그렇게 화낼 일이었는지 따져봤다.

컵에 물을 주면 엎어버리는 것,

더 오래 목욕을 하고 싶어 하는 것,

밥 먹다 장난치는 것, 음식을 뱉어내는 것, 기저귀를 갈기 싫다고 도망 다니는 것.

그날따라 말을 안 듣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평상시에 하던 아이의 일상적인 행동들이었다.


‘아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이성의 끈을 놓친 거였구나!’


드라마를 보며 답답하고 갑갑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던 것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대로 아이를 맞이하고,

육아의 현장을 전쟁터로 만들어버린 건 결국 나였다.


‘아이는 언제나 똑같이 말썽을 부린다.

오늘따라 이상한 건 나다.’


앞으로 절대 그 드라마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며칠 뒤,

그날의 나처럼 또다시 소리를 지르는 나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아이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내 상태와 기분을 점검했다.

배가 고픈가, 어디가 아픈가, 잠이 부족했나 등등.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되고, 아프다면 약을 먹고 회복하면 되고,

잠이 부족했다면 아이가 잘 때 같이 자서 수면을 보충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의 컨디션을 조절해야 육아의 질이 향상된다는 당연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역시 육아를 전쟁터로 만드는 주범이었다.

남편과 다퉜거나, 시댁 또는 친정과 트러블이 있을 경우 나에게 쌓인 화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아이에게 퍼붓기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는 항상 집안을 휘저어놓고,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고 눌러 담은 화는 언제든지 튀어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아이에게는 상처가 되고, 나에게는 후회만 남길 뿐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른들끼리 풀자.’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나의 화를 아이에게 전달하지 말자.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만약 남편과 말다툼을 한 뒤,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

마냥 웃으며 육아를 하기에는 힘이 든다.

그럴 때는 철저히 이 기분은 남편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지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생긴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차라리 잠시 아무 말을 하지 말고 멍해져 있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때로는 ‘짱구가 못 말려’에 나오는

유미엄마처럼 화가 끓어오를 때

토끼 인형을 꺼내어 펀치를 날리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이다.

어떤 지인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

아이가 없는 방에 살며시 들어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악’하고 소리를 지르면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된다고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타인,

특히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화를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대체로 내가 이상해서 화를 못 참는 경우가 많지만

원더 윅스라는 특별한 시기에는

진실로 아이가 이상해 보일 수 있다.

가끔 화창이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거나 방바닥에 드러눕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대부분 잠이 쏟아져서 그렇다.

엄마라서 단번에 알게 된 사실은 아니다.

몇 차례 아들을 겪다 보면 누구나 알게 될 사실이다.

그럴 땐 아이가 원하는 걸 주는 대신

침대로 데리고 가 잠을 재운다.

그럼 몇 분 안에 잠이 들곤 한다.

이렇듯 아이들도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평소에는 말을 잘 듣던 것도

짜증을 내며 고집을 부릴 수 있다.

엄마라면 대체로 아이가 배가 고픈지, 졸린지, 불안한지 알기 때문에 아이의 컨디션을 살펴서 서로의 화를 잠재우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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