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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Oct 25. 2023

신이 머물다 간 순간

“엄마 데리고 응급실 가는 중이야.”


아빠의 전화에 가슴이 철렁했다. 지병 때문에 자주 다치는 엄마가 이번엔 정말 크게 다치신걸까. 체한 줄 알고 읍내 병원엘 갔는데 뜻밖에도 의사가 큰 병원에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주었단다. 응급실에서도 명확하게 설명해주질 못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이런저런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엄마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가 여러 명 있을 수 없어 엄마 곁에 남은 언니가 온 가족에게 번갈아 전화하기를 반복하며 이틀이 지났다. 일반 병동으로 입원수속을 밟은 뒤에야 언니와 보호자 교대를 하여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며칠 동안 계속된 열과 나빠지는 혈액 수치로 엄마의 눈동자는 또렷하지 않았고 말도 어눌하게 하셨다. 병명조차 알지 못해 불안함이 가득했지만 나는 밝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썼다.


“별 일 아닐거에요, 엄마. 금방 나을거니까 얼른 퇴원해서 다같이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그러나 금방 낫기는커녕 격리 병동에 옮기라는 의사의 지시가 떨어졌다. 살인진드기에 물려 감염된 것으로 추정이 되니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서란다. 풀밭에서 놀다가 진드기를 붙여온 강아지를 만져주다 덩달아 물리신 모양이었다. 강아지도 앓기 시작했다는 아빠의 말이 의사의 진단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쯔쯔가무시병과 다르게 살인진드기에 물린 경우에는 치료제가 없고, 병원에서도 딱히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환자 스스로 회복해야만 한다. 진드기에 물리는 대부분이 시골에 사는 노인들이다보니 치사율이 30%에 가깝다. 30%의 치사율을 반대로 말하면 생존률이 70%이란 뜻이지만 생존률에 희망을 걸기엔 30이라는 숫자는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다.


병명은 알았지만 실체를 알고나니 더 두려웠다. 의료지원 없이 스스로 회복하기엔 엄마는 너무 약한 몸을 갖고 계셨다. 게다가 격리 병동으로 옮긴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중환자실로 옮긴다는 통보를 받았다. 혈액 수치가 더욱 나빠져 이제는 면역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렀기에 환자를 보호하고 더 집중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란다.


엄마를 중환자실로 들여보내자 의사가 동의서를 받으러왔다. 필요한 경우 더 잦은 혈액검사를 위해 심장으로 연결되는 관을 목에 꽂을 수 있고 그럴 경우 추가 위험 방지를 위해 환자의 손과 발을 침대에 묶는다는 내용이었다. 이제야 엄마가 중환자실에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이 났다.


짐을 챙기러 입원실로 돌아가는데 의사가 설명해준 장면이 자꾸 상상이 됐다. 의식이 있는 상태로 그런 장치를 몸에 달고 있으면 얼마나 괴로우실까.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 엄마를 만나게 되면 씩씩한 척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장치를 한들 엄마가 낫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는데 괜히 고통 속에 계시다가 돌아가시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함과 걱정이 소용돌이치며 마음에 폭풍이 몰아쳤다. 아빠에게 사실대로 전해야할지 망설여졌다. 유방암 검사 결과를 앞두고 있는 언니에게도 말하기가 어려웠다. 호주에 살고 있어 전화로 소식을 전해들을 수 밖에 없는 동생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다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나흘이 지났을까. 며칠 동안 먹지도 않고 앓던 강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리해서 말귀를 잘 알아듣는 녀석이라 무척 예뻐하신 아빠는 강아지 눈동자가 자꾸 생각난다고 하셨다. 비슷한 시기에 엄마는 중환자 신분을 벗어나 다시 격리병동으로 옮겨졌고 느리지만 회복하기 시작하셨다. 이틀 후 혈액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퇴원이 결정됐다.


엄마가 입원하고 있던 시기에 제주도에서도 40대 여자가 살인진드기에 물렸다는 기사가 났었다. 그리고 최근 그 여자는 살인진드기 감염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는 후속 기사도 나왔다. 40대도 이겨내지 못한 살인진드기 감염을 몸이 약한 60대 엄마가 30%의 치사율을 통과하여 살아남은 것이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주인공인 김신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의 인생이건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 주었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가는 순간이다.


엄마는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살고자 하는 의지가 거의 없었다고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지병도 있는 마당에 더 이상 남편과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이대로 죽어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엄마는 회복을 하셨다. 신이 머물다 간 순간이 있었던걸까.


어쩌면 엄마가 중환자실로 이동하던 날 작은 1인실 격리병동에서 홀로 울고 있던 내 곁에 신이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일흔을 앞두고도 아직 꽃피우지 못한 엄마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내 마음을 보듬으면서.


엄마는 진드기에게 물렸던 그 곳으로 돌아가 식사 준비를 하고 마당에 난 잡초를 뽑고 주문들어온 꿀을 택배로 보내러 읍내에 나가신다. 완벽한 일상이다.


가끔 난 궁금하다.

삶의 의지가 없는 이에게 신이 머물렀던 이유를.

그리고 그런 이가 신의 뜻을 언제쯤 깨달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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