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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Oct 25. 2023

프란치스코 아저씨가 남긴 선물

확실히 기억하기 시작한 때는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다. 부모님이 시골 마을 성당에서 함께 어울리는 벗들을 만드셨다는 것을. 부모님의 벗들은 마음이 곱고 이해심이 많으셔서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을 실감하게 해주신 분들이었다. 그 분들의 자녀가 우리 자매 또래여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함께 노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들은 서로의 집을 허물없이 드나들었고 부모님의 벗들은 우리 자매를 참 이뻐하셨다.


어느 날 부모님의 벗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 병중이라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정말 갑자기 돌아가신 듯 했다. 그 분의 아들이 내 결혼식 주례 신부님셨기에 나는 장례식장에 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일정을 다 취소하고 바로 장례식장으로 출발하며 그 분의 죽음을 생각해보았는데, 친분과 상관없이 죽음이란 아직 내게 낯선 감정이었다. 눈물도 나지않는 막연한 슬픔.


가톨릭에는 '연도'라는 것이 있는데, 장례식장에서 죽은 이를 위해 함께 바치는 기도다. 조문객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만큼 연도를 바치러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조문객 수에 비해 비좁은 장례식장이 혼잡하여 복도로 나가 연도가 끝나길 기다렸다. 소식을 듣고 부의금을 대신 전해달라던 호주 사는 동생이 분위기가 궁금한지 카카오톡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인사 드렸어?”

“응. 아녜스 아줌마는 휠체어로 이동해서 오고 계신대.”

“파킨슨 병 걸리셔서 그렇구나. 신부님이랑 윤희언니는?”

“응. 엄마아빠 보자마자 눈물 한 바가지 쏟더라. 옛날 생각 많이 나나봐.”

“… 우리 어릴 때 그 집에서 자고 오기도 했는데..”


문득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고 오기도 했다던 동생의 말에 해마 어딘가에 깊이 저장된 채 들춰본 지 오래된 기억이 조각조각 꺼내어졌다. 지병이 있는 엄마가 아플 때마다 그 집에서 저녁먹고 자고 오던 일, 여름성경학교 때 우르르 몰려다니던 일, 그림을 잘 그리던 그 집 언니에게 만화 속 예쁜 주인공 그려달라 조르던 일, 오색 약수터에서 쇠맛 나는 약수를 맛있다고 서로 속이며 마시게 하곤 깔깔대던 일…


조문객들 중 일부는 나도 아는 어른들이다. 세월이 함께 한 얼굴이지만 기억이 난다. 그 얼굴 너머로 나의 어린 시절이 겹쳐진다. 오늘 나는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러 왔지만 고인 덕에 잊고 지낸 어린 시절을 만났다. “나 어릴 때는…”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나이가 되어 이제는 추억이라 불러야 할 선물같은 어린 시절을.


고마워요 아저씨.

즐거운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천국에서 평안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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