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미 Oct 25. 2023

01 굴러들어온 글감

‘아직인가...’


바로 답이 올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1분마다 확인을 한다. 틈만 나면 확인하느라 꼬박 하루 반나절을 보낸다.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바로 내 글의 피드백이다.


6주 동안 매주 한 편의 에세이를 제출하는 탄탄글쓰기 수업이 3주차에 접어들었다. 강의 듣고 에세이를 써서 제출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두 분의 선생님께서 과제로 제출한 모든 글에 피드백을 해주신다. 내 글에 조언해줄 누군가를 오래 기다렸기에 피드백 시간은 내게 귀하고 귀하다.


에세이라는 장르를 제대로 써본 적이 처음인데 두 번의 과제를 할 때는 생각보다 글이 제법 잘 풀렸다. 몇 번의 퇴고를 거쳐서 만족스럽진 않아도 부끄럽지 않는 수준까지 만들어놓고 과제 제출 게시판에 올렸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 센 피드백을 원한다고 요청했기에 A4 종이가 수정내용으로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있으면 어쩌나 걱정도 조금 되었다. 내 글의 수준도 모르고 괜히 센 피드백을 요청한건 아닐까 짧은 후회도 했다. 하지만 두 번의 피드백에서는 지적보다 격려가 더 많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칭찬도 있어서 기뻤다. 자랑할 곳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쭐한 마음을 어디든 풀어놓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세 번째 에세이를 쓰는 날.

주제는 “은유를 적용해보기”다. 두 편의 에세이에서 칭찬도 들었으니 이번에도 야심차게 신선한 은유를 만들어서 근사한 에세이를 써보려고했다. 그런데 이 ‘은유’라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처럼 쉬우면서도 명확한 은유를 만들고 싶었으나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짝짓는 것조차 되질 않았다.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도대체 ‘내 마음’은 어디있고 ‘호수’는 어디있는 걸까. 신선함을 찾을 겨를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 눈도장을 찍으며 살피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 등을 떠올려봤지만 결국엔 설명이나 직유로밖에 써지지 않아 난감함은 커져만 갔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많이 읽지 않아 떠오르지 않는걸까? 마감이 코앞인데 이제와 소설책을 뒤적일 여유는 없었다. 급할 땐 짧고 굵은 유튜브 영상이지! 유튜브에서 부랴부랴 은유를 검색해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내용은 좋았지만 예시의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서정주의… 윤동주의… 휴우, 난 이런 고차원적인 생각은 못하는데…. 여전히 은유는 뜬구름이었다.


글감이 생각나지 않을 땐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글감 고민을 언제까지 해야하는지, 지난 번엔 수월했는데 이번에는 왜 이리 어려운건지 거듭 생각하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그건 바로 ‘경험’. 이전에 쓴 두 편의 에세이는 내 경험이기에 딱히 고민하지 않아도 쓸 수 있었다. 장례식장 방문과 엄마의 중환자실 입원이라는 자주 겪지 않는 특별한 일. 그때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한게 지난 에세이 내용이고, 특별한 일인만큼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이라 큰 고민없이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글감을 내가 ‘찾아야’하고 ‘만들어야’하는 차이점이 있다. 이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글감이 저절로 찾아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걸. 더구나 그 글감이 꽤 괜찮은 것이라면 그건 근사한 선물이라는 것을.


지난 두 편의 에세이를 나름 술술 써내려간 것이 나의 글쓰기 실력인 것인양 우쭐했던 마음이 어이없고 부끄러워 헛웃음이 나왔다. 노트북을 들고 두둥실 떠올랐던 난 어느 순간 내려와 의자에 앉았다. 그래, 처음부터 의자가 내 자리인거지. 저 위가 아니라. 그리고 모니터와 기싸움을 한다. 아마도 이것이 앞으로 내가 글쓸 때마다 겪을 일상이겠지.


언젠가 내가 책을 내고 나름 작가라고 불리며 강의를 하는 때가 온다면 글쓰기 풋내기 시절에 하던 고민을 돌아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본다. 글쓰기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며 한숨만 쉬고있을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위안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글감이 마땅치 않아 시작조차 못하더라도 살다보면 좋은 글감이라는 선물을 무심히 만나게 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그대 이름은 이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