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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Oct 25. 2023

나 정리하는 여자야

오마이걸 멤버 비니는 정리의 여왕이다. 양말은 크기와 색깔별로 구분해서 넣어두고 향수도 크기별로 정렬을 맞춘다. 가지런히 개켜진 옷가지는 차곡차곡 포개어있다. 밤에 늦게 자는 이유는 낮에 못한 방청소를 하기 때문이며 심지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방청소 끝나고 방 둘러볼때라고 할 정도다. 게다가 “방청소가 취미인게 특이해요? 다들 좋아하지 않나?”라며 순수한 표정으로 되묻기까지 한다.


반대로 옥주현은 정리를 못한다. 스스로 '아주 못한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길래 그렇게 말하나 싶었는데 옥주현이 열어보인 자동차 트렁크는 그야말로 난리법석이었다. 온갖 물건이 뒤섞여있어서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느니 새로 사는게 나아보일 정도였다.


청소를 좋아하는지 정리를 잘하는지는 개인의 성향일 뿐 좋고 나쁨의 잣대를 들이댈 일이 아니다. 너무 깔끔을 떨거나 지나치게 더러워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면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살면 된다. 그런데 나는 희한하게도 정리를 잘 하지는 못하면서 정돈되지 않은 상황은 마음이 편치 않아 하는 두 가지 성향을 다 가지고 있다. 두 성향이 충돌하는 상황이 내겐 늘 숙제였다.


어릴 때는 게을러서 정리를 안 했다. 성인이 되어 직장을 구해 혼자 방을 얻어 살게 된 후에는 크게 지저분하지도, 아주 깔끔하지도 않는 수준으로 지냈다. 원룸에 있는 짐이래봐야 옷가지가 전부였으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이 가능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꽤 복잡해졌다. 남편도 나도 쇼핑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물건들이 무척 많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아이가 없고 식구래봐야 남편과 나 둘 뿐인데도 각자의 사계절 옷뿐만 아니라 스노우보드 용품, 텐트와 화롯대 등 캠핑 용품, 사놓고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트래킹 용품, 집수리가 취미인 남편이 사들인 수많은 공구들로 작은 크기의 우리집은 점점 창고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건들이 자기 자리도 없이 여기저기 쌓여있는게 싫어 변변찮은 살림솜씨로 아무리 정리를 해봐도 정리한 티가 나질 않는다. 정리를 한다고 했는데도 무엇 하나 찾으려면 이곳저곳 뒤져봐야하는 건 마찬가지다. 내 정리솜씨가 부족한 탓일까 고민하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수납전문가가 쓴 정리에 관한 책.


수납전문가가 말하는 정리의 첫 번째 원칙은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공간 대비 물건이 너무 많으면 정리가 되지 않을 수밖에. 버려야한다는 원칙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며 옷장정리를 시작하고, 한보따리 버린지가 벌써 삼년 전 일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인지 아니면 지난 번에 충분히 버리지 않았기 때문인지 옷방은 또다시 어수선해졌고 그걸 보며 마음 불편한지도 벌써 여러 날.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겠다 싶어 유튜브로 옷 개는 방법을 익히고 수납에 필요한 제품도 몇 가지 주문했다. 버릴 옷과 남길 옷을 나누고 각종 용품들은 용도에 맞게 구분해두었다. 어떤 식으로 수납해야 찾기 쉬우면서도 직관적일지 정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생업이 있어 한 번에 긴시간을 들일 수 없기에 틈틈이 옷방을 들락거리다보니 보름이 지났다. 옷은 또다시 한 보따리가 나왔고 버릴 옷걸이 역시 그만큼이었다. 나의 수고에 보답하듯 정리가 끝난 옷방은 한결 훤해지고 여유로워졌다. 옷을 찾고 꺼내기 쉬워진 것은 물론이다. 살면서 이렇게 마음에 꼭 들게 정리를 잘한 적이 없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방이 만족스러워 괜히 더 자주 들어가본다.


아, 방청소를 한 후 방 둘러볼 때 행복하다는 오마이걸 비니의 마음이 이런거구나.


이번 명절 연휴 기간에는 내 방을 정리했다. 주방이나 욕실처럼 남편과 함께 쓰는 공간을 먼저 청소하느라 내 방은 늘 뒷전인 탓에 내 책상 위는 옥주현의 트렁크 저리가라할 정도다.


내 방에는 정리의 첫 번째 원칙을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옷의 경우 디자인이나 색상이 내게 어울리지 않으면 과감히 버릴 수 있었는데 문구류는 어울리고말고할 게 없으니까. 단색펜, 다색펜, 형광펜 등 펜 종류만 연필꽂이로 3통이 넘고, 색연필은 따로 1통 분량이나 된다. 그런데 도무지 버릴 수가 없다. 펜 뿐이 아니다. 노트류는 크기와 디자인이 제각각이라 다 쓸모가 있어보여 역시 버릴 수가 없다. 문구류 앞에선 왜이리 소심해지는지. 결국 크게 버리는 것 없이 물건들의 자리를 다시 정하고 기준을 달리하여 분류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그럼에도 다행이 책상은 멀끔해졌다. 옷방 정리를 하며 솜씨가 늘었나보다.


이번 정리로 나의 정리실력에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안해서 그렇지 못하는건 아니었다고 혼자 으스대본다. 열심히 한 이번 정리가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지만 다음 번엔 좀더 빠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다음 번에 정리할 때는 과연 내 방의 물건들을 잘 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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