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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Dec 01. 2023

오늘 즐거웠어요. 우리 또 꼭 만나요.

미용실에서 커트를 하고 있는데 뒷줄 어디선가 큰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들이 대학간 이야기며 밥을 많이 먹는다는 것 하며...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담당 디자이너의 응대를 보건데 그간의 사정을 알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닌 듯 하다. 



저녁 무렵이라 손님이 많이 빠져나가 조용한 미용실에는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휴... 그만 듣고 싶다...'



불편한 마음 한 켠에 십 년도 더 된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미용실에선 반대로 나이 어린 헤어 디자이너가 손님에게 열심히 말을 걸고 있었다. 어제 인터넷에서 본 재미있는 이야기 등을 화제로 던지며 손님과 대화가 끊이지 않게 노력하는 모습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그 배경에는 손님과 친밀감을 형성하라는 미용실 원장의 방침이 깔려있겠지.



요즘 젊은 여성 소비자들이 미용실에 바라는 것이 "제발 말 좀 걸지 말아달라"는 것을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모양이다.



대화라는 것이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들이붓는 모양새가 되지 않으려면 말을 이어나가려는 의지나 이야기의 결이 양쪽 모두 비슷해야한다. 그런 면에선 난 조금 눈치가 없는 편이긴 한데, 얼마 전 만난 그이는 워낙 싹싹하고 호감가게 말하는 스타일이라 그날의 대화는 아주 즐거울 수 있었다.



점심을 같이 먹기 시작해서 해가 지고 어두울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그이도 우리의 대화가 나쁘지는 않았을거라 짐작한다. 이렇게 말이 잘 통하고 서로 신이나서 이야기한 적이 얼마만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는 행복전달물질인 세르토닌과 쾌락의 도파민이 평소의 열 배쯤 분비됐을 것 같다.



원치 않는 대화는 피로가 되 버린 사회에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대화하기 즐거운 사람인 적이 있었을까? 헤아려보지 않아도 그리 자신있는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이를 만난 날 만큼은 나도 괜찮은 말벗이 된 것 같다. 



나이를 먹을 수록 너그러워지기는커녕 별거 아닌 말 한마디에 마음이 쉬이 돌아서는 요즘 말벗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걸 느낀다. 상대방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전적으로 상대방 때문이라고 탓하기만 했던 건 아닐까 반성해보게 된다. 


한 달이 지나면 새해를 맞이한다. 내년엔 귀한 말벗을 몇이나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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