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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Dec 04. 2023

이름을 불러주세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2000년대 초반이던가. 이유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이 시가 유행했다. 난해하지 않은 내용에다 서정적이면서 길이도 짧아 외우고다니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이 시가 썩 마음에 들었는데, 한 편의 시로 '이름을 부르는 것'에 담긴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어서다.  



졸업 후에는 가족과 친구들 외에 이름으로 나를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떤 형태로는 호칭으로 부른다. 부르라고 지은 이름을 놔두고 왜 굳이 호칭을 써야하는걸까? 오랫동안 궁금했다. 



초등학생 때는 식당에 간 엄마와 연락할 일이 있어 식당으로 전화를 걸어 "김OO님 바꿔달라"고 했다가 엄마한테 야단을 맞은 적도 있다. 이유는 엄마의 이름을 댔기 때문이란다. 그 시절의 엄마들은 이름이 아닌 OO엄마라고 불렸던 때라 이름을 부르는 것이 민망하셨던 모양이다. 



'이름을 부르는게 부끄러운건가?'



어린 나이였지만 혼나야하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때를 되돌아봐도 여전히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이름 보다 호칭을 부르는 이유는 관계성에 무게를 두는 문화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상대방이 이름을 가진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나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는 문화.



지금 내 앞에서 서 있는 이가 사돈의 팔촌이면 어떤가. 김아무개라 이름을 가진 여자 또는 남자라는 사실만 알아도 충분한 것을. 



관계를 따지는 것이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한 좋은 의도에서 출발하였을 지 모르나 이제는 나와 얼마나 가까운지를 재는 척도로 변질되어 배타성을 키우는 수단이 되었다. 사돈의 팔촌이면 남이다. 우리의 관계는 남이라고 못박고서 출발하는거다. 김아무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과 내가 아니라.



나는 이 문화가 참 불편하다. 나는 난데, 상황에 따라 이모가 되었다가 숙모가 된다. 형수님이 되었다가 제수씨가 된다. 그저 오롯이 나일 순 없는걸까? 우린 서로에게 이름으로 불리며 의미있는 존재가 될 순 없는걸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 참 마음에 든다. 그때도 좋았고 바뀌지 않은 문화 속에 사는 지금도 여전히 좋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이만큼 강력하고 의미있는 행위야!'



라고 나 대신 외쳐주는 것만 같아서. 




호칭을 부르는 사회 속에서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면 너무 유난을 떠는 것일테지만 그래도 늘 소망한다. 

내 이름을 불러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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