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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Jan 03. 2024

돌아오지 않은 반찬통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간 H가 아기보러 놀러오라며 연락했다. 그때가 돌 전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생활이 갓난아이에게 맞춰져있어 밥챙겨먹는 것조차 어려울 것 같아 밑반찬을 몇 개 만들어 방문했다. 물론 H는 내게 그런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시간 단위로 자고깨기를 반복하는 갓난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삶이 얼마나 피곤하지 알기에 오로지 호의에서 비롯되었을 뿐.


그 후로 H는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갈 때까지 몇 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반찬통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 사이에 우리가 종종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 미루어보건데 당시의 내 반찬은 썩 고마울 일은 아니었 것 같다. 나 아니어도 시어머니와 이모 등 주변에서 이미 많이 챙겨주고 있었으니. 


그랬다. 나는 안해도 될 일을 굳이 한 것이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민망해지는 기분이다. 늦게나마 알게 됐다. 배려와 오지랖은 한끗 차이라는걸. 상대방이 원치 않는 배려는 오지랖이라는 걸.


돌아보니 살면서 배려를 가장한 오지랖을 많이 부렸던 것 같다. 너무 명백해서 부정할 수 없는 오지랖도 분명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은 대부분 만족스럽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하지 않을 행동인데 그땐 왜 그랬을까. 알아야했다. 더이상 스스로 민망함을 만들어내며 살고싶진 않으니.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모른체 했을 뿐. 그건 바로 내 안에 숨어있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 때문이란걸. 어렴풋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걸까.


"고마워,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이런 칭찬을 듣고싶었던 것 같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음을 이젠 안다. 어린 시절부터 칭찬과는 가깝지 않은 삶이었으나 그것을 동경했기에 주위의 좋은 평판에 대한 욕망이 꾸준히 쌓여왔나보다.


내 안의 불편한 나를 만나고나니 한결 홀가분해진다. 실체를 알았으니 배려와 오지랖의 구분도 명확해진다. 이제는 좀더 신중하게 살 수 있지않을까. 진짜 내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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