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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Dec 31. 2023

생일 그리고 부고

오늘은 내 생일이다. 날짜가 한 해의 끄트머리에 있다보니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생일인듯 아닌듯 지나가기가 일쑤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챙겨주셨지만, 사회에 나오니 이런저런 행사와 모임이 언제나 우선이어서 생일의 존재감이 없다.



결혼 후에는 언니네 가족과 함께 생일맞이 식사를 하는데, 이번 생일에도 어김없이 방문해주었다. 생일이 있는 마지막 주는 연말이라 길이 많이 막힐 것 같아 한 주 일찍 만나자고 했는데, 그날이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이브다.



그렇게 내 생일파티는 크리스마스 이브 분위기와 뒤섞여 들뜬 채로 보내나했는데, 남편 친구 아버지의 부고소식이 느닷없이 날아왔다. 남편은 강원도로 내려가고, 언니네 가족은 강원도에서 올라오는 상황.



생일맞이 외식을 하며 남편의 빈자리를 설명해주자 언니도 다음날 장례식장에 가야한단다. 직장동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철원까지 간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남은 가족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가 기일인 셈이다. 즐거워할 수도 마냥 슬퍼할 수도 없는, 매년 반복되는 감정 속에 남은 날들을 살아야한다.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어제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생일이야기, 부고소식까지 흘러갔다. 지인도 몇 달 전에 외할머니 장례식을 치렀는데, 공교롭게도 장례 이틀 뒤는 어머니 생신이며 외삼촌은 자식이 자살한지 일주일 만에 어머니상을 당한 기가막힌 사연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선택할 수 없다. 그 자체도, 날짜와 시간도.

태어날 때는 세상의 모든 축복을 받으며 기쁨과 탄성 속에 나오지만 죽음은 아무리 호상이어도 그럴 수 없다.



오래 사는 것만이 복일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웃으며 안녕할 수 있는 상황과 날짜를 골라서 죽을 수 있다면 오히려 행복한 죽음이 아닐까? 안락사가 아닌 자연사로 말이다.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이 앙상한 몸으로 침대에 손발이 묶여 학대당하는 현장을 어느 방송에서 보았다. 처참하고 끔찍했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죽음을 고를 수민 있다면 그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마지막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니 생일이 태어남보다 죽음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를 고민해보는 것도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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