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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Dec 28. 2023

조카에게 받은 첫 선물

우리집안엔 아이가 한 명 뿐이라 내게도 아들같은 녀석인 조카가 어느새 초등학교 졸업반이다. 아기때부터 지금까지 옷이며 신발이며 이것저것 사주었는데, 얼마 전에는 조카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했다는 언니의 연락에 용돈을 보내기도 했다. 


내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날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이모! 생일 선물 뭐 갖고싶어요?"

"말하면 다해주는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헤헤. 그래도 말해보세요."

"글쎄, 유찬이가 주는거면 다 좋지."

"그럼 제가 아주 좋은 걸로 준비하겠습니다!"

"기대 해도 되?"
"그럼요!"


큰소리를 친 조카가 어떤 선물을 줄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초등학생인 조카가 해줄 수 있는게 대단치않을거란 생각에서라기보다 선물이 뭐 별건가 하는 마음이랄까. 주고받는 편의를 생각해서 현금이면 제일 좋고, 물건이면 실용성있는게 좋다는 그런 생각이 자리한지 오래되어 설렘마저 사라져버렸으니.


언니네 식구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조카가 부스럭거리며 종이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조카의 손에 들려있는 선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 온게 아닌가.


조카의 작품은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입체감이 살이있게 만든 것으로, 선명한 빨강과 초록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풍겼다. 시옷자 모양의 갈색 지붕 아래 초록색 벽이 소품들을 받쳐주고 바닥에는 잣으로 보이는 다람쥐 먹이가 몇 알 떨어져있다. 벽 앞에는 빨간 리본이 커다랗게 달린 크리스마스 리스를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빨간 모자와 초록 목도리를 한 갈색곰 한 마리가, 오른쪽으로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각각 자리하였다. 트리는 안타깝게도 부러진 채로 누워있었다. 종이가방 안에서 연결부위가 살짝 부서진 모양이었다.  부러진 트리가 있을지언정 작품 세계는 따뜻하고 정감있는 풍경을 연출했다. 3D 프린터에 손을 데기도하며 새벽 4시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선물이란 이런 거였지. 마음과 정성을 담아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는 것.


어른이 되고 나니 선물의 가치는 돈의 액수와 같아졌다. 현금으로 주면 그 금액만큼이 내 마음과 정성이요,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 주고받는 금액이 암묵적으로 정해진 현실을 산다. 


직접 만든 선물을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지가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어른에게 건넨 조카의 작품은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는 아이에겐 주지 않는다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두근대며 기다리던 마음도, 생일선물 포장지를 벗길때 느끼던 설렘도 한때나마 있었다는 걸 떠올리게 해주었다.그 감정들이 모여 행복이라는 더 커다란 기쁨을 맛보던 시절이 있었는데....


다음 방문 때 부러진 트리를 보수해주겠다지만 지금도 좋다. 트리가 부서졌다해도 충분히 좋았을 것이다. 이제는 작은 기쁨들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만큼 단단해진 내 마음이 조카의 작품으로 몽글몽글해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느낀 즐거움이 다시 찾아온걸까. 명확하진 않지만 행복했던 감정들이 스쳐간다. 


조카의 작품은 우리집에서 오가는 발길과 눈길이 가장 자주 닿는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작품 자체로도 사랑스럽지만 덕분에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진 내 마음이 도로 단단해지지 않도록 자주 보기 위해서다. 이모의 생일을 축하해주려는 조카의 기특함을 떠올리며 정성이 담긴 선물이 주는 설렘을 잊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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