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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Mar 05. 2024

로또 1등에 당첨되면

로또 1등 당첨금 230억.


내 기억엔 이 액수다. 로또 한 장에 2천원이던 시절에 내가 살던 춘천에서 이 엄청난 금액을 받아갈 당첨자가 나온 것이다. 230억은 사상 최고 당첨금이었기에 한동안 동네가 술렁거렸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서 당첨자는 경찰공무원이며 로또 심부름을 한 의경은 심부름값으로 2천만원을 받았고, 당첨자는 당첨금 일부로 장학재단을 세우고 미국으로 이민갔다는 이야기까지 여기저기서 쉽게 들을 수 있었다.


20대 순수한 시절에는 복권에 당첨되길 바라는건 요행을 바라는 좋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무릇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정당하게 돈을 벌어야지, 복권당첨같은 지름길을 원해서는 안 된다는 나름 당찬 신념을 가졌다. 신념을 애써 지키려는건 아니었지만 230억 당첨자가 부럽긴 했어도 이런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서인지 나는 로또를 산 적이 없다.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중소기업이어서일까, 업종이 에이전시어서일까 아니면 둘 다 해당되서일까. 업무는 힘에 부쳤고 근무한지 3년이 지날 무렵 반복되는 야근으로 체력도 바닥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먹고살려면 돈은 벌어야하고 나이는 들어가니 예전처럼 "뭘 해도 먹고살수 있지 않겠어?"라는 생기발랄한 생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매주 토요일이면 동네 로또가게에 발도장을 찍기 시작한 것이. 당첨금은 230억이던 시절에 비해 1/10도 안되는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아무렴 어떠랴. 몇 억이라는 돈이 순식간에 통장에 찍히는데.


그러나 내게는 로또번호를 알려줄 조상님도, 당첨운도 없다. 내가 사는 로또 비용은 그 주 누군가의 1등에 기여할 뿐이었다. 계산을 해보면 요즘 로또 1등이 평균 10억이니 세금 떼고나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액수가 안 된다. 꼬마빌딩이나 겨우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간절히 바란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강화도 어느 구석진 곳에 널찍한 서재와 작은 텃밭이 있고, 창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집을 짓고 싶은 꿈이 있다. 땅도 사고 건물도 올리고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이 꿈은 말 그대로 꿈이다. 아주 큰 금액이 아닌 이상 요즘 로또 1등 당첨금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그림같은 집에서 글을 쓰고싶은 소망에서 한 발 물러나 꿈과 타협을 한다. 그림같은 집은 됐으니 지금 살고있는 집에서 생계를 위해 돈 버는 일 대신 글 쓰고 책 읽고 운동하는 삶을 살고싶다고.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일부는 재테크로 굴리면서 돈을 불리고 일부는 생계 유지에 쓰면 가능하지 않을까? 


몸이 좋지 않아 쉬고싶은 날이나  업무를 진행하다 생기는 갈등에 마음이 몹시 불편한 날엔 그 마음을 달래고자 잠시 즐거운 꿈속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넉넉한 통장 잔고에 생계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히 글 쓰는 나를 상상해본다.


...이번 주에도 변함없이 로또 가게엘 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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