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아, 나 블로그 시작했는데 하다보니까 예전에 너 시쓰던게 생각났어. 블로그 해보는거 어때?"
"내가 시를 썼다고?"
"응. 너 백일장 나가고 그랬잖아."
"아... 맞아. 그랬지."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지윤이를 백일장 시 부문에 내보냈다. 무슨 이유로 지윤이가 선택되었는지 모르지만 얼마 후 또 다른 백일장 참가 권유를 받은 지윤이는 내키지 않는다고 구시렁거렸다. 그게 내 기억의 전부다.
지윤이의 시를 읽어본 적도 없고 구시렁거렸던 그 백일장에서 입상했는지 조차 모른다. 예의상 물어보지 않은게 아니라 그때는 '상'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단지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만 생각했을 뿐인데 그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기억에 오래 남았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뒤늦게 글을 좀 써보겠답시고 블로그를 시작한 나는 지윤이에게 다시 글 써보기를 권했다. 너의 재능을 묵혀두기엔 너무 아깝지 않느냐고.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지윤이는 웃으며 말 했지만 그 한마디면 되었다. 열 살도 되지 않은 아들 삼형제를 키우는 엄마의 삶은 매일이 전쟁인데 글 쓰기가 가당키나 하겠냐는 뜻이니. 게다가 사교육을 거의 시키지 않는 터라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아이들에게 쏟을 터.
"그래, 지금은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꼭 글을 썼으면 좋겠어."
나는 아쉬움을 담아 대답하고는 이어진 지윤이의 말에 잠시 울컥했다.
"나도 잊고 산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어. 기억하고 있어줘서, 다시 해보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그 뒤로 한 동안 만나지 못한 지윤이의 생일에 매년 그랬듯 카카오톡으로 선물을 보냈다.
"선물 잘 받았어. 함께 나이들어가는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이야. 이런 표현을 하다니 역시 글 쓰던 솜씨 어디 안 갔네.'라고 생각하며 십 년 쯤 흐른 뒤엔 지윤이가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들 셋 키우는 육아일기를 쓰고 있을까 아니면 힘든 시기에 잘 버틸 수 있게 해 준 신앙에 대해 쓰고 있을까.
<뼛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는 절친한 친구와 함께 월요일마다 함께 글을 썼다고 한다.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두세시까지 함께 글을 쓰고 서로에게 읽어주는 작업이다. 친구와 나탈리 모두에게 글쓰기와 서로 나누는 것 그리고 우정이 모두 중요했기 때문이란다. 함께 글을 쓸 친구가 있는 것도 함께 하는 작업이 글이라는 것도 마냥 부럽다.
어쩌면 나와 지윤이가 나탈리 골드버그와 그의 친구같은 모습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와 몇 십년 후에도 여전히 우정을 나누고 글을 쓰고... 참으로 근사하고 신나는 일이다. 이번 생일에 지윤에게 선물을 보낼 때는 나의 이런 소망을 담은 한 구절 덧붙여야겠다.
지윤아, 우리 오래도록 함께 나이들면서 같이 글도 쓰는 친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