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에 처음 가본 발리는 덥고 습한 푸켓과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자연 풍경도 비슷하고,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넓지 않은 도로에서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달리는 것 조차도 비슷했다.
건조하고 추운 한국의 겨울 속에 머물다 습하고 더운 날씨를 만나니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밖은 너무 덥고, 에어컨이 신나게 돌아가는 실내는 춥다. 에어컨 온도를 낮추자니 높은 습도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갑작스런 온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내 몸은 결국 종합감기에 걸리고야 말았다.
'한국에서도 안 걸린 감기를 더운 나라에 와서 걸리다니, 이게 무슨 꼴이람.'
숙소 바깥은 30도를 오르내리건만 심한 오한을 견딜 수가 없어 니트로 된 긴 옷에 기모까지 껴입고 다녀야했다. 땀도 나는데 춥기도 한 몹시 불편한 상황이다.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에어컨 바람을 피해 야외 테이블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 겨울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바람이 무시무시하다. 어느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우리나라 겨울에 방문한 캐나다 사람이 이 정도 추위야 괜찮다고 말해놓고선 어느 순간 슬그머니 패딩 지퍼를 올리며 한국의 추위를 인정한 재밌는 장면도 있었다.
'지중해성 기후인 나라에서 살고싶다....'
어릴 때는 겨울만 되면 따뜻한 나라에서 사는 상상을 했다. 칼바람에 몸서치리지 않아도 되는 정도면 더 바랄게 없었다.
인도네시아에 속하는 발리는 일년 내내 열대 기후다. 계절의 변화라곤 우기와 건기가 전부다. 온도만 본다면 추위를 싫어하는 내게 더없이 좋은 조건이지만 왠지 썩 끌리진 않았다. 높은 습도로 에어컨을 끄지 못한다면 찬바람 속에 지내야하는 건 마찬가지.
그러다 문득 이렇게 더운 나라에는 4계절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겨울이 없으면 '눈'이라는 단어도 없을텐데.
'이 나라 사람들은 봄이 주는 느낌을 알까?'
혹독한 한국의 겨울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은 포근한 바람과 함께 존재감을 알리는 봄 때문이다.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지가 지나면 매일 조금씩 길어지는 해를 헤아려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벌써 모습을 드러내기엔 때이른 것 같지만 용기를 내 피어오른 꽃봉오리도 사랑스럽다. 패딩 속을 뚫고 들어오던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싱그러운 냄새가 밀려오면 알아차릴 수 있다.
'봄이구나!'
괜히 가슴이 설레고 신이 난다.
발리에는 칼바람도 없지만 봄도 없다. 봄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이 즐거움을, 새롭게 가질 수 있는 희망을 발리 사람들은 알까? 사계절이 있는 대한민국에 살기에 해마다 '봄'을 선물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발리에 가서야 깨달았다. 겨울은 싫지만 겨울이 있어 봄 또한 존재하는 것이니, 이제는 겨울이 있음에 감사해야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