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놀아."
어릴 때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80년대 시골에서 살림을 하던 엄마는 손빨래를 하고 장을 보러 나가고 음식을 해야하느라 분주한데 고만고만한 아이 셋이 집에 있면 정신 사납다. 그래서 엄마는 막내는 등에 업은 채 나와 언니에게 매일 나가 놀라고 하셨다.
엄마가 '나가 놀아'라고 하는 말엔 걱정과 염려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자동차가 많지 않았기에 교통사고 위험이 적었고, 지역공동체가 형성되어있어서 아이를 잃어버릴 일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밖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올 땐 흙투성이가 될 지언정 엄마는 언제나 마음놓고 나가놀라고 하셨다.
지난 주 토요일 저녁 즈음에 심심한 입을 달래러 집 앞 편의점엘 갔다. 입구 옆에 붙어있는 간이식탁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컵라면과 빙그레바나나맛우유를 먹으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그 아이들은 편의점에 배가 고파서 왔을까? 이야기는 나누고싶은데 갈 곳이 없어서 온걸까?
5층짜리 빌라로 겹겹이 둘러쌓인 우리 동네는 높은 인구 밀도에도 불구하고 놀이터가 하나 뿐이다. 크지도 않은 놀이터에는 아장아장 걷는 아가부터 축구공을 차며 노는 중학생들까지 뒤섞여있다. 아기들에겐 위험하고 중학생들에겐 신나게 공을 찰 수 없는, 모두에게 불편한 놀이터다. 그러나 이 곳을 벗어나면 마음 놓고 놀 공간이 없다.
주택과 상가로 빼곡한 도시에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고 소리지르며 놀 수 있는 곳이 없다.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친구를 만나고 있는걸까? 어린 아이들은 키즈 카페를 가야하고, 고학년인 아이들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학원엘 간다고 한다. 아이들이 게임만 한다고 걱정이라지만, 게임을 해야 그 속에서 친구를 만나고 친구와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이 가능해지니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집을 나서면 세상이 온통 놀이터였던 내 어린 시절과는 전혀 다른 삶이다.
이른 나이부터 시작되는 사교육과 인구 과밀화로 부족한 공간, 아이들은 놀아야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놀 곳을, 놀 시간을 빼았는다. 학교가 끝나 길거리에 쏟아져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이런 세상에 살게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천방지축 뛰는 발걸음에, 까르르 신나게 웃는 얼굴에 세상이 함께 즐거워지는데 다들 금방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동네에서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고 뛰어노는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올까. 어쩌면 모래장난을 하며 해가 저물어가는 줄도 모르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