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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Jul 05. 2024

역시 난 회사체질이 아니야

"에디터님, 이 부분 전체가 반영이 안 된 것 같아요."


이럴 수가. 올 게 왔다. 어쩐지 600쪽짜리 3권을 만들면서 진행이 너무 매끄럽다 싶더니. 막내 디자이너가 큰 덩어리 부분을 업데이트하지 않았다는 걸 마감 임박해서야 발견했다. 분명히 작업해두겠다고 씩씩하게 한 대답이 메신저에 남아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무래도 말로만 했나보다. 아...야속한 막내 디자이너. 내 잘못이다. 작업해두었는지 중간에 한 번이라도 물어봤어야했는데. 



야근을 위해 저녁 식사를 하고 속속 돌아오는 직원들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난다. 2015년에 입사하여 8년째 일하는 중인 이 회사. 스무 명 남짓 일하는 이곳이 내게는 회사다운 첫 회사다. 적지 않은 나이에 입사했어도 업무처리, 직장 내 인간관계, 의사소통,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없다는 걸 뼈아프게 알게 해준 회사.



몸은 고되고, 능력은 제자리인 것만 같고, 밥은 주로 혼자 먹는 이 곳에서 내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당장 이직을...? 그건 더더욱 꿈도 못 꾼다. 



'앞으로 십년 후 나는 이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있을까.'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는 상황을 내가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불합리한 프로세스를 스트레스 받지 않고 무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 일을 하는 나는 즐거운가.'



생계를 책임질 직업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젊은 날의 댓가를 몸과 마음의 병으로 톡톡히 치르면서 하게 된 고민들이다. 그 어떤 질문에도 '그래' '괜찮아' 라는 대답이 나오질 않는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이어지는 고민.



뒤늦은 방황이 시작됐고 몇 년을 돌고 돌아 드디어 내 직업을 정했다. 



'글쓰기 강사'



준비는 당연히 되어있지 않았다. 이제부터 해야한다. 아직은 생계를 위해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순 없지만 내가 정한 곳을 향해 느리더라도 꾸준히 가려고 한다.



회사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글쓰기 강사일로만 먹고 살아야하는 때가 오면 불안정한 소득이 아쉬워 매월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액수가 들어오는 직장인의 삶을 그리워하게되진 않을까?



그런 아쉬움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도록 내가 선택한 직업으로 즐겁게 살 수 있길 바란다. 소득의 많고 적음보다 나의 선택과 자율을 존중받으며 일하는 환경이 내겐 더 소중하니까.



행복을 위해선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 첫 회사에서 얻은 귀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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