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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미 Oct 17. 2023

최종 면접에 울어본 적이 있나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방송 일을 조금씩 시작하던 24살, 기다리던 홈쇼핑 공채가 떴다. 당시 5개 홈쇼핑 사가 있었는데 그중 메인이라 할 수 있는 G사. 중간에 잠깐 휴학을 했던 터라 공채가 떴을 때 나이보다 조금 늦은 3학년 2학기를 다니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졸업을 언제 하든 아예 고졸로 살든지, 붙고 나서 고민해야겠다 생각하며 무작정 지원했다. 각 홈사마다 2~3년마다 한 번. 뽑은 인원도 다섯 명에서 많아야 열명을 넘지 않기 때문에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토록 바라던 공채이기에.









쇼호스트 공채는 지금은 또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나 때는 꽤 긴 과정이었다. 1차는 서류전형으로 자소서를 써서 내야 하고, 2차는 카메라테스트로 간단한 자기소개 및 면접을 보고, 3차는 실무면접으로 상품을 정해 PT를 했다. 이 상품은 보통 회사에서 미리 후보를 주고 그중에서 고르게 했다. 정말 예전에는 특이하고 기발하고 신기한 것들을 본인이 직접 선택했던 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대부분은 튀려고 특이한 상품을 들고 와서인지 언제부터인가 후보를 정해줬다고 들었던 것 같다.  4차엔 임원면접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에도 상품 PT를 했지만 때로는 팔기 어렵고 일반적이지 않은 상품을 주기도 했다.





내가 면접을 봤던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모 홈사의 경우 당황하게 만드는 상황을 일부러 부여했었다.




북극에서 에어컨을 팔아보세요, 혹은 출산율이 1명도 넘지 못하는 미래에 기저귀를 팔아보세요...  





마지막관문엔 최종면접을 보는 곳도 있었고 바로 신체검사를 하는 곳도 있었다. 이렇게 다 마치고 나면 빠르면 2개월 보통은 3~4개월 정도 소요됐고, 처음에 1,000명이 넘는 지원자들은 5명 내외로 줄어들게 된다. 정말 피를 말리는 과정이었다.




 

왜냐면 나는 대학교 수업과 공채 시험을 동시에 준비하며 쇼호스트 아카데미 스터디도 나갔으니까. 평일 수업이 끝난 날은 엄마와 백화점에 가서 면접 의상을 골랐고, 때로는 같이 공부하는 언니들과 새벽 동대문시장에 가서 옷을 고르기도 했다. 물론 그러고 난 다음 날 아침부터 면접 준비를 꾸역꾸역(이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시작했고.  





차곡차곡 저장해 둔 연습 영상, 저 때의 나는 참 열심이었다.








G사의 카메라 테스트 땐 엄마가 골라준 빠알간 플레어 원피스를 입고 카메라 테스트를 마쳤던 기억이 난다.




인생 80세 기준으로 지금 제 인생의 시간 나이는 오전 7시 20분입니다. 오후엔 방송 경력을 쌓기 위해 오전 수업에만 대학교 시간표를 맞춘 저에게 7시 20분은 매일 집에서 나서는 시간입니다.



뭐 이렇게 부지런하다. 열심히 산다. 아직 젊다. 이런 말을 나름 멋있게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나이에 비해 너무 진지하단 평을 들었더랬다. 다행히 이 모습을 좋게 봐주셨던지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져 다음 면접에 PT를 할 수 있었는데, 그땐 또 '마시는 흑마늘 진액' 상품을 골랐다. 환장. 아마도 저 때의 나는 어린 나이가 핸디캡이라 생각되어 반대로 성숙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떨어졌...








앳된 얼굴로 흑마늘을 짜 마시며 좋~다~ 외치는 24살 대학생을 상상해 보니 그저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나름 나만의 이야기로 풀어가며 개성 있게 PT를 마쳤다고 생각한 그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본부장이라는 사람의 질문이 이어졌다.






채미 씨는 부모님을 아주 많이 존경하나 봐요?
 



진심을 담았기에 나름 만족한 PT를 마친 상태로 무슨 말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나에게 또다시 본부장이라는 사람의 말이 이어졌다.





얼마나 존경하면 본인 얼굴에 손대지 않고 이렇게 방송하지?
방송 경험도 있다는 사람이 본인 카메라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나 있어요?





지금 이런 말을 들었다면 녹음을 못한걸 아쉬워하며 고소를 하거나, 뉴스에 제보를 하거나 뭐라도 했을 텐데. 저 시절의 나는 그냥 눈물이 흐르는 걸 닦지도 못하고 웃으며 괜찮은 척 말을 이어갔던 것 같다. 당황하는 척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면접 장에 가득한 카메라 감독, 쇼호스트 심사위원, 스태프 분들 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순식간에 나온 눈물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쾌한 티를 내면 떨어질까 괜스레 미소 지으며 아무 말이나 했던 과거의 내가 지금 생각하니 또다시 안쓰럽다. 나 말고도 결혼한 지 5년이 넘은 언니에겐 'ㅇㅇ씨는 결혼을 꽤 오래전에 했는데 아직 아이가 없네요, 안 낳는 거예요? 못 낳는 거예요?' 이런 것도 말이라고 내뱉은 저 사람에게 분노할 가치도 없지만, 다시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결국 면접이 끝나고 울며불며 성형외과에 안과에 (내 눈 모양을 지적했기에) 엄마 손 잡고 돌아다녔지만, 결론은 나는 '정상'. 저 사람은 '비 정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지 않았다. 나중에 면접 본 또 다른 홈사에서는 '채미 같은 저런 사람이 회사에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긴 한데... 어디서 좀 구르다 와야겠어.'라는 말도 들었으니까. 아직도 그 '구르다' 오라는 말이 뭔지 아리송하지만 좋지 않은 말 같다는 직감은 그때도 들었다.



사실 이런 일을 당하다 보면 지칠 만도 하고 홈쇼핑이라는 업계가 싫기도 할 만한데,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포기할 땐 하더라도 10년은 해 보자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됐다.











그래서 결심했다. 홈쇼핑의 꽃, 주인 '호스트가' 안되면, 우선 '게스트' 라도 되어야겠다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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