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글은 많이 써 봐야 는다

by dannB



너무 생각만 하다 보면 글 쓰는 법을 잊어버린다. 그냥 쓰면 되는데 괜히 잘 쓰고 싶은 마음에 머릿속으로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는 탓이다. 결국 정리하는데 지쳐 글은 쓰지 않게 되고 생각은 그냥 흘러가 버린다.


그렇게 글을 안 쓴 지 거의 5년이 되었다. 분명 나는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는데, 졸업 시나리오도 완성해야 하는데 생각한 것이 문장으로 활성화되지 않아 답답할 따름이다. 사실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해 수업일지를 쓰는데 그 짧은 글을 작성하는 것조차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누가 봐도 잘 쓴 것 같은 글을 쓰고 싶어서 괜히 맞춤법이라든지 문체라든지 비문 같은 것들을 지나치게 신경 써놓고 정작 완성된 글은 볼품없어 실망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디어는 번뜩였는데 그걸 글로 옮기지 않으니 그저 찰나의 생각으로 스쳐 지나가버린다. 나는 그 생각들을 존재하게 해야 한다. 그것을 원하니까. 그래서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글을 써 보는 것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 게 지금의 나에게는 더 맞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 얼마나 기품 있는 글을 쓰겠다고 5년이나 생각을 묵혀뒀을까? 학생 때의 나는 더 거침없었고 자유로웠는데, 갑자기 글을 쓰는 것이 하나의 틀이 되어 나를 옥죄는 것 같았다. 평생 졸업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 친구가 얼마 없는 나는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행동력 있는 사람이 아니다. 뭐가 그렇게 겁나는지 자주 망설이고 미뤄버리는 습관이 몸과 머리에 배어 있다. 솔직히 그냥 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걸 안다. 여태껏 많이 그래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싫다. 남들이 생각하는 내가 하나도 같지 않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게 싫고, 별 볼일 없는 나를 마주하는 게 싫다. 나는 내가 합리화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도 합리화되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글도 오랫동안 피했던 거고(읽는 건 많이 했지만). 태껏 나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관찰자, 제삼자로서 살아가길 원했다. 사실 지금도 그러고 싶다. 엄청난 회피성임을 비로소 인정한다. 근데 그렇게는 안 되니까. 쨌든 나는 나로 살아야 하니까.


얼마 전에 찍고 보정한 사진을 쭉 훑어보며 문득 느꼈다. 너무 예쁘게 보정이 잘 된 사진첩의 사진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다, 어차피 남는 건 사진 뿐이랬는데 그러면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글이 그냥 나만 아는 생각 모음으로 남을지라도 나중에 내가 읽어보면서 추억팔이 할 정도의 가치는 있지 않을까? 확실했다. 실제로 중고등학생 때 휘갈겨두었던 글 대학생 때 상당히(아니다. 그냥 적당하게..?) 도움이 되었다. 갑자기 지금까지 흘려보낸 생각들이 뼈아프게 아까웠다. 이거 그냥 어떻게든 써서 남겨야겠구나. 마침 사회적 거리두기도 진행되고 있고 실업급여도 받고 있으니 집에서 몸과 마음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울 수 있는 건 지금 뿐! 그래서 는 이런 식의 글을 쓴다. 진짜 그냥 아무것도 아닌 글 한 덩어리지만, 이렇게 내 생각을 우르르 쏟은 게 너무 오랜만이라 설레기도 하고 생각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었네 싶어서 신기하기도 하다. 바라건대 이 마음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기를.


무기력함과 우울함은 만성이다. 그래도 나는 오늘 이 글을 쓴 게 내가 한 발짝 내디뎠다는 근거라고 생각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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