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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J Jan 29. 2021

자궁과 이별을 하고

잘가라, 내 몸의 일부였던 자궁아

이렇게 아픈사람들이 많았던가


평일 낮 종합병원은 사람들로 늘 북새통이다. 

새삼 이렇게 아픈사람이 많나 싶은 정도로 주차장 들어가는 것도 한참걸려서 성질급한 사람들은 주차하다가 수명이 단축될 듯 싶다. 주차장 뿐이랴. 원무과는 물론이고 체혈실, 엑스레이 촬영실 등등 어디가나 변호표는 필수다. 약 7개월 전에 엄마가 대장암 판정을 받기 전까지만해도 종합병원이라고는 갈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2020년에는 한달에 두어번씩 꼬박꼬박 병원에 오게되더니 2021년에는 연초부터 병원행이다. 

이제는 나도 그 사람들 중에 하나가 되어 입원을 하게 됐다.

내 침대가 배정되고 환자복이 주어졌다. 간호사로부터 설명과 주의사항을 듣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여러가지 설명을 들었는데 특별한 통증이 없기도 했고 원래 성격도 낙천적이기도 해서 별 감정이 들지 않았다. 저녁식사를 연한 죽으로 하고 두어시간쯤 지나니 병실은 벌써 취침모드다. 


"현재로는 내일 두번째 순서로 수술을 하게 될꺼예요."

아침 9시~10시 사이에 수술실에 가게 될꺼라고 했다. 배꼽을 소독하고, 속옷, 양말을 미리 탈의하고 머리는 양갈래로 묶으라고도 했다. 그리고 또또또....


손가락 끝에 살짝만 베어도 그렇게 아픈데, 사람의 장기를 드러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테다. 99.7%의 성공률을 가지고 있다는 자궁제거술은 주치의에게는 일상적인 수술이라고도 했다. 목숨을 걸려있는 수술은 아니라 할지라도 알아야될 당부도 숙지해야할 일도 많았다.

그렇게 오지 않을것 같은 수술 전날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8시 30분쯤 되어 간호사가 와서 대기하라고 한다. 

수술실이 있는 2층까지는 그냥 걸어서 간다고 해서 남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손을 잡았는데 갑자기울컥, 코끝이 찡해졌다. 같은 시간에 수술을 한다는 예닐곱살짜리 꼬마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내가 수술대에 오른다는 사실이 그랬는지, 고개를 들면 왠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에 수술실 입구에서 남편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체 손을 흔들고 들어왔다.

수술실은 여기저기 수술준비로 분주했다. 수술용 침대에 누우니 하얀색 격지무늬 천장에 쓰여있는 성경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모태신앙이지만 교회를 간 날보다 안간날이 더 많은, 이제는 기독교신자라고 하기에도 뭣한 나인데, 서늘한 공기가 가득한 수술실의 침대에 누워 성경구절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쭈르륵, 흘러내렸다. 불과 30분전만 해도 뭔가 의연하게 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꺼라 생각했는데, 왜 주책없이 눈물이 날까. 수술 전에 목사님이 오신다는데 그 전에 마취를 시켜줬으면. 그러고 보니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꼬마도 어디쯤 침대에 누워있겠지. 

꼬마야. 떨지마. 우리 같이 이겨내자.

이런 저런 생각들이 오고가고, 간호사들의 이런 저런 질문들이 오가고, 뭔지 모를 주시를 맞고 잠시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나보다.

까무룩한 소리에 눈을 반쯤 떴는데 어느새 3시간 여가 지나고 입원실 내 자리에 와 있다. 수술이 끝났다.

그리고 몰려오는 고통. 아, 이런거구나. 


대장암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온 엄마는 연신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이고 아파, 아이고 아파.. 마취가 깨고 난 후 몰려오는 극심한 고통때문이었을 것이다. 12분마다 무통주사를 눌러주라는 간호사의 말과는 상관없이, 엄마는 바짝 마른 입술을 겨우 움직여 계속해서 무통주사를 눌러달라고 했다. 그 몇시간 동안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의 가장 나약한 모습을 본 것 같다. 그래서 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손과 발을 주무르고, 주사를 시간맞춰 눌러주고 물에 적신 거즈로 엄마의 바짝마른 입술주변을 닦아주곤 했다.

그런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나니, 나도 수술이 끝나고 나면 그런 모습이 아닐까 걱정한 적이 있다. 나도 엄마가 맞았던 무통주사와 같은 주사를 달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렇게 아프고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서 옆에서 남편이 정확히 15분 만에 무통주사를 눌러주었고 그날은 밤에 잘때까지 꼼짝않고 침대에 누워 내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빨리 없어지기만 바랐다. 



"내 몸에서 빨리 나가줄래?"


병원에 들어온지 사흘째. 이제 관건은 빨리 가스를 배출하는 것이다.

복강경 수술은 배 속에 가스를 주입해 배를 빵빵하게 한 후 작은 구멍을 내 수술하는 것을 말하는데, 수술 후 고통과 흉터가 적어서 산부인과는 물론 암수술에도 많이 적용되는 수술법이라고 한다. 대신 수술 후에 몸 속에 주입되었던 가스를 배출해야 식사를 할 수 있는데 그 가스는 몸을 움직여서 나오게하는 수 밖에 없다고. 

수술을 하고 다음날이 지나니 어느정도 거동이 가능해져서 병동 복도를 열심히 걸어다니는데도 가스가 나와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밥도 밥이지만 가끔 배가 쥐어짜듯이 아픈 가스통(痛)이 참기가 어려워서 더 열심히 걸어다니니 지나가던 간호사들마다 안쓰러워하며 응원을 해준다.

내가 있던 42병동은 계속 왔다갔다하기 불편해서 5층으로 갔다가, 지하 1층으로 갔다가 점점 걷는 시간을 늘렸다. 사실 침대에 있어봐야 딱히 할 일도 없었기도 했고, 빨리 '뽀오옹~~~'이라고 시작을 해주길 바랄뿐.


결국 하루를 또 넘겼다.

오늘은 나와줄까하고 아침부터 열심히 걸어다녔는데도 소식이 없다. 나를 볼때마다 간호사들이 안쓰러워하며 소식 없냐고 물어보는데, 오후늦게 간호사 한분이 미지근한 찜찔팩을 주며 옆으로 누워 잠시 대고 있어보라고 한다. 그 찜질팩을 받아들고 침대에 누워 오른쪽으로 누웠다가, 왼쪽으로 누웠다가 한참을 하다보니, 

"==33"

그리고 나는 간호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외쳤다.

"나왔어요!!!"


역시 사람은 무언가 고난이 있을때 작은 것에 감사하기 마련이다. 결혼을 하고 일찌감치 방구를 튼 신랑이신원하게 껴대는 방구가 부러운 순간이 있다니. - 아직 나는 공식적으로 트지 않았다 - 평소에 조심스럽기만 하던 이 작은 신호가 이렇게 감사할 수가. 

3일만에 먹는 멀건 미음도 감사하고, 소변줄을 떼고 화장실을 가게된 것도 감사하고, 내일은 미음이 아니라 죽이 나온다는 것도 감사했다. 퇴원은 하루가 늦춰졌지만 남편이 옆에 있는 보호자 침대에서 함께 있어주니 그것도 감사하고, 이제는 커피를 마셔도 된다는 간호사의 한마디가 감사했고, 병실 창문으로 보이는 겨울하늘도 또 감사했다. 


반가워! 입원한지 4일만에 먹는 병원 죽


        

병원에서 4일 밤을 자고 퇴원을 했다. 며칠간은 챙겨 먹을 약도 많고, 샤워도 못하고, 움직이는 것도 조심해야하지만 주사를 주렁주렁 달지않고 걸어다닐 수 있다는게 새삼스러웠다. 


그렇게 50년 가까이를 내 몸에 있었던 자궁과 이별했다. 

자궁과 이별하고 나면 뭐가 어떻다더라, 무슨 부작용이 있다더라, 몸에 무슨 변화가 생긴다더라...와 같은 많은 말들을 들었는데 처음에 약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집에서 쉬어서 그런지 간혹 찾아왔던 허리디스크도 잠잠하니 그것도 편안하기도 하고, 여름이 아니라 한겨울, 특히 올해는 눈도 많이 오니 집에서 집콕하면서 보내기 너무 좋은 날들인것 같다.




한낮에 우리집엔 해가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다. 그러면 굳이 난방을 하지 않아도 집이 따뜻한데 그럴때 흔들의자에 앉아서 커피라도 마시다 보면 혼자 빙긋이 웃게된다.

암수술과 항암까지 무사히 마쳐준 엄마도 다행이니 꽃다발이라도 하나 보내줘야 겠고, 장모에 이어 마누라까지 병원을 들락거려 본의아니게 강남ㅅ병원을 훤히 꿰뚫게된 신랑에게는 예쁜 티셔츠라도 하나 사입혀야지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또 감사하게 된다. 


자궁이별이야기 여기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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