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은 내 몫
대략 1년 동안 나는 자만과 오만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용기를 갖고 과감하게 벌인 일이 하나씩 진행되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주변에서도 응원하며 칭찬해주니 ‘그래, 유학 도중에 한국에 들어와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거 자체가 쉽지 않은 거잖아?’ 라며 어깨에 힘도 들어갔었다. 그래서일까. 주변에 잘하고 있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진작에 ‘몰랐던 것’과 ‘어려운 것’을 인정했었더라면 지금쯤 조금 더 나은 작품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한계에 부딪힌 것을 알면서도 주변 시선이 두려워 모른 척하며 넘어갔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남들도 잘 모를 거라고 자만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괴로웠었다. 또한 늘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기에 밤마다 불안함에 잠 못 이루는 나를 애써 무시하며 괜찮은 '척'을 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과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니 주변 지인에게도 모난 점만 보여주게 됐다. 함께 잡지를 만드는 동안 나만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내가 이만큼 열정을 쏟았으니, 상대도 나만큼 열정을 쏟아주길 바랬다. 나는 내 방식대로 상대를 ‘감히’ 평가했었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다 끝나면 행복할 거라는 생각만 하며 지난 시간을 견뎠던 것 같다. 하지만 인쇄가 끝나고 배송까지 마치던 날, 나는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았다. 후련하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은 어디에도 없었고 오히려 마음이 더 무겁고 찜찜했다. 정신없이 바빴던 나의 일상이 허무해질 정도로 고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나에게 넘치는 건 당연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생에 첫 출간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모든 의욕은 사라졌고 주변 지인들과의 연락도 피했다. 그리고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다른 일을 찾으며 바쁘게 살려고 애썼다.
슬럼프가 찾아온 이유는 실낱같이 믿고 있었던 성취감과 행복함은 온데간데없고, 실망감만 남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열정에 대한 보상이라고 스스로를 자위하려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열정보단 지난 나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오는 부끄러움 때문에 숨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내가 열정을 쏟은 척하며 만든 결과물은 스스로를 자만했기에 부족함 투성이었고, 살면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즐길 줄도 모르고 주변을 원망만 했다. 매일이 불안했던 나 자신을 모른 척하며 살아온 나에게 미안했고 오만함으로 상대를 평가하며 상처를 주기도 했다.
온전치 못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을 차마 다시 보기가 겁이 났다. 아쉽다. 내가 조금 더 긍정적으로, 재밌게 일하며 시간을 보냈더라면 지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이 여유로운 시간은 당연 열정적으로 보낸 지난 과거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