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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의 세상 Jul 22. 2024

쉰다는 불안

"그럴 땐 쉬어도 괜찮아"


억쑤로 쏟아 부었다, 장맛비가 곧 멈춘다는 기상청의 예상은 보란듯이 틀렸다. 주말 내내 꿉꿉하고 습하던 날씨는 기다렸다는듯이 주중의 치열한 싸움을 끝낸 우리에게 쉬는 기쁨을 느껴야할 주말에 쏟아부었다.


"우리 비와도 괜찮겠지?'


사실, 토요일 저녁에 오랜만에 전 직장 동기들과 야끼토리를 먹으며 맥주 한잔하고자 약속을 잡아놓았는데, 굳은 날씨에 걱정되는 목소리로 동기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간만인데, 날씨가 대수랴. 우리는 열대 우림과 같은 군자역을 뚫고 어느 작은 야끼토리 집에 모여들었다.

 

 지근한 꼬치 요리에, 1일 1잔 구색을 맞춘 칵테일과 맥주. 그렇게 나를 포함해 4명은 비를 뚫고 한잔 기울이기 시작했다.  진짜 안주는 사실 사는 이야기였다. 몇 년 전만에해도 한 회사에 공채라는 이름의 온실 속 화초였던 우리는 이제는 이제 각자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이른바 '경력직'이 되었다.

 

 아직 광고회사였던 전 직장을 다니는 동기.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동기.

 퇴사 후 벌써 두 번째 이직을 한 나.


 그리고 한 명은 , 여전히 광고회사를 다니는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최근에 퇴사하고 이른바 워라벨이 좋을 것을 예상되는 공공기관 홍보담당으로 취직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실 광고회사를 다닐 때 꽤나 과중한 업무와 불규칙한 생활 패턴 때문에 금방이라도 그만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친구였다.

 그래도, 사기업도 아닌 갑작스런 공공기관 취직이라니. 조금은 놀라웠지만, 동기를 위해 잘된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호기심 반, 덕담 반 말을 건넸다.


 "거긴 어때? 그래도 칼퇴근하니까 스트레스는 덜하려나?"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꽤나 반전이었다.


"아니, 나 완전 사기 당했어"


 동기는 사실, 회사에서 급작스런 팀이동과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피하고자 사실은 퇴사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선뜻 아무 뒤도 없이 그만두는 것이 두려워 그냥 퇴사는 하지 못하고 이직을 선택한 것이다. 이직 자리를 알아보던 중 공공기간의 홍보담당이라는 타이틀이 추는 안정감과 워라벨이 메리트로 느껴졌단다. 그래서, 그곳에서 일도 하면서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해보고자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왠걸, 막상 입사를 해보니 전임자가 갑자기 휴직을 하는 바람에 인수인계를 해줄 사람은 없고, 광고회사에서 새로운 경력직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업무들을 맡기면서 동기에게 업무가 과중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공공기관이라고 해서 무조건 업무가 덜 힘들다거나 하는 건 오산일 수 있다. 요즘에는 웬만한 사기업보다도 야근이나 당직을 서야하는 곳들이 많으니까. 다만 동기의 경우는 이직하면서 연봉을 상당히 많이 깎았다. 돈보다는 시간과 워라벨을 중요시하는 결정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되었으니 적잖이 속이 상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은 그래서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그만둔 광고회사에서 겪었던 것만큼이나 큰 불안과 업무를 잘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으로 잠도 설친다는 것이었다.


 동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리는 비슷한 의견으로 입을 모았다.


"너, 그쯤 되면 쉴 때가 됐어"

"맞아, 어차피 새로운 적성을 알아보는 게 목표라면 몇 달 쉬면서 생각해도 돼"

"그래, 쉬면서 이 회사 , 저 회사에 흩어져서 다른 일하는 동기들 이야기도 들으면서 말이야"


그 동기의 표정은 수긍하는 듯하면서도 알쏭달쏭한 얼굴이었다.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의 표정처럼 말이다. 나는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이렇게 물어보았다.


"00이 너,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구나?"


동기는 대답했다. "응! 맞아. 그래서 더 어려운 거 같아!"


그렇다. 사실, 동기는 초중고를 다닐 때는 학생이라는 소속감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했고, 남들 보기에 에 우러러 볼 수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생 시절에도 성실했던 동기는 남들 다할 법한 휴학한 번 한 적없이 바로 취준생 모드에 돌입했고, 그렇게 단 한 번도 본인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 없이 바로 회사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몇년 간의 업무를 수행해온 것이다. 그리고나서도 잠깐의 이직하면서 쉬는 단 한 두주의 쉼조차도, 다음 목적지가 정해져 있음에도 불안했다는 동기는 , 살면서 단 한 번도 어딘가에 소속해보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불안한 것이다, 온전히 나로서 쉬는 것이.


 물론, 나도 맘대로 쉴 수 있느냐라고 한다면 그 질문에 자유롭지는 못하다. 광고와 크리에이티브를 그렇게도 좋아하면서 이따금씩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할 때면, 나 역시도 갑자기 다음주 월요일에 출근할 곳이 사라지면 너무나 불안할 것 같다는 공포가 엄습해오면서, 사직서를 주머니 속으로 꾹꾹 눌러담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팽팽 놀았다. 중학교 때도 내가 하고 싶은 밴드부도 했다. 공부 안하면 큰일날 것 같아서 그나마 고등학교 시절에 시작했기에, 나느 소속감은 있었을지언정 나로서 놀거나, 나로서 탐색하는 일이 어릴적에 비교적 잦았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안다. 그러나 그 동기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것에서 왔다. 십수년간 남들에게 인정받는 길을 걸어왔지만, 정작 나 스스로의 마음에 소리에서 나오는 "진짜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온전히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이른 바 "그냥 쉬어: 러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했다. 정말로,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빗소리를 안주삼아 집근처 2차 이자카야 맛집까지 찾아내면서 우리는 이야기 꽃을 피웠고, 동기들은 서로의 삶을 도모하며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힐링이었다. 집이 가까운 나는 조금 잦아든 비를 가르며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면서, 과연 이게 우리 동기들만의 이야기일까 싶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 학교에서 경쟁하고, 뒤쳐지면 , 남들보다 못하면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는 건, 우리 동기들만 느끼는 불안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되면 수능치고, 대학교 가고, 취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낳고, 집사고 ... 쭉쭉 단계별로 늘어진 수많은 소속감과 과제 속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로 존재하면서 온전히 쉰다는 개념을 잃어버리고 산다.


 쉰다는 불안. 얼마전 뉴스를 보니 24년도 대졸자 중에 무려 400만명이나 구직조차하지 않고 쉬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누군가는 취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일수도 있고, 누군가는 아무 것도 하기 싫어 번아웃일 수 있는 통계지만, 한편으로는 자발적으로 쉬는 사람들에게조차 우리는 어떤 시선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신이 원해서 새로운 직업을 얻고, 출근하고, 그 돈으로 나만의 삶을 영위하느 것만큼이나 보람찬 일은 없다. 하지만 이토록 쉬는 것조차 우리 맘대로 쉬지 못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에게 '쉰다'라는 의미가 이토록 부정적이게 정의되고 있다는 것에 텁텁한 가슴을 감출 길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돌아누우니, 내일 모레면 또 월요일. 둥근해가 또 떠버리면 어김 없이 출근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토요일이 다 지나간 게 아찔해져버렸다. 물론 다음주 내내 비가 와서 둥근해를 볼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출근 시간을 돌아오고야 만다. 그래서 토요일 집에 들어와서 만큼은 아무 생각 안하고 쉬기로 했다. 생각을 끌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언젠간 나도 내 동기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쉰다는 불안이 없이 잘 쉬는 날이 오겠지. 하며.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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