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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의 세상 Oct 21. 2020

결혼, 계산은 해보셨나요?

"계산해보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결혼은 계산하는 겁니다"



 얼마 전 꽤나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수많은 화제를 남기고 종영한  <부부의 세계>. 친구들은 '쀼의 세계'로 줄여 부르곤 했다. 영국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이 시리즈는 불륜과 복수라는 다소 자극적인 주제를 소재로 했지만 막장드라마와 웰메이드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사진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잘 나가는 가정 병원 여자부원장인 주인공(김희애 분), 그녀의 남편은 지역에서 알아주는 프로덕션 감독(박해준 분)이다. 둘 사이에는 아들 하나가 있고, 두 사람은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듯보인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의 머플러에서 낯선 여자의 주황색 머리카락이 발견되고,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주인공은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알게 되고 복수를 다짐한다. 후반부에선 남편 역시 부인에게 복수를 계획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아마 많은 분들이 보셨셔서 대략의 내용은 알고 계실 거라 믿는다). 분륜 과 복수라니, 한국사람들이 쌍수 들고 환영할 소재가 한 데 모인 셈이다.


꼬리가 길면 언젠간 밟힌다. 사진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


 극 중 남편의 숨겨둔 애인(한소희)은 주인공을 만나 이런 얘기를 한다.  


“가면 같은 관계래요. 불행하대요 그 사람은. 껍데기뿐인 결혼이라서”


 당돌한 한마디에 제대로 팝콘 각이 벌어진다. 극 중에선 아주 잠깐 스치는 대사였지만, 순간 결혼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여러 단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가면 같은 결혼 관계'는 과연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할까? 어딘가 익숙한 드라마 속 대사. 사실 비슷한 주제의 단어들이 우리의 현실 속 대화에서 종종 오르내린다. 이미 30대에 접어든 지인들이 결혼에 대해서 나눈 대화를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다. (순수함을 지키고 싶은 10대 친구들은 건너뛰어도 좋다)


“선을 봤는데…. 괜찮긴 한데… 직업이 조금 불안정해서…. 연봉은 나쁘지 않아”

“네가 지금 찬 밥 더운밥 가릴 때야? 더 늦기 전에 가야지”

“결혼하고 연애는 완전 달라, 집도 사야 하고, 아기 문제도 있고”

“결혼은 집안 대 집안이 하는 거야. 지독하게 현실이더라고”

“그래서 결혼이 골치 아픈 거야. 사람만 보고 못하잖아”


  이들도 분명 20대 때는 뜨거운 연애를 했고 과감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결혼에 대해서 차갑고 이성적이게 변해간다.  왜 그럴까? 그 이면에는 냉정한 우리의 가치관 하나가 숨겨져 있다. 바로 결혼은 두 사람이 모든 조건을 맞춰보는 일종의 ‘거래’라는 관점이다. 한국에서 결혼은 ‘현실’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대부분 여기서 출발한다.



결혼할 상대? 연애할 상대? 과연 별개일까? 사진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


 우리에게 결혼은 왜 지독한 현실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크게 2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우리가 결혼을 사람 대 사람이 아닌 집안 대 집안을 따지는 유교적 관습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급격한 경제성장 속에서 자본주의적 기준이 결혼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선 결혼이 거래적 관점을 가지는 건 지극히 한국적인 문제다.


 헌데, 흥미로운 사실은 결혼에 대한 거래적 관점이 근대 이후 서양에서도 큰 골칫거리 중 하나라는 점이다. 우리보다 먼저 자본주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서양은 개인을 노동력으로 평가한 역사가 더 오래되었다.  더 나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더 큰 노동가치를 지녔고, 쉽게 부를 쟁취할 수 있었다. 더 부유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결혼 시장에서도 더 나은 배우자로서 평가받았다.


  에리히 프롬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도 유사한 내용이 잘 기술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현재 ‘사랑’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모든 것이 교환가치로 평가되는 현실에서 사랑은 본래의 가치를 상실하고 상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혼시장에서도 우리는 상대를 얼마나, 왜 사랑하는가 보다, 나에게 얼마나 많은 ‘효용감’을 가져다 줄 지 따진다. 사랑이 아닌 계산을 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결혼시장에서 계산은 어떨까? 우리는 흔히 상대의 외모, 학력, 재력, 집안 등등의 항목에 보이지 않는 가격표가 붙인다. 그리곤 하나씩 바코드를 찍어본다. 물론, 에리히 프롬의 지적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인간의 욕망은 더 나은 조건의 배우자를 찾아 해메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정작 중요한 사실을 놓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결혼하는 상대는 포장지가 아니라 그 안에 진짜 물건,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상품시장과 결혼시장은 이 지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상품 구입은 수단으로써의 효용이 궁극의 목적지이지만, 결혼은 인간에게서 얻는 목적론적 효용, 즉 행복이 최종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가 결혼을 통해 또 다른 개인적 영달을 달성하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이들도 최초의 사랑은 진심이었을까? 사진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


 다행스럽게도 내 주변엔 목적론적 결혼을 지향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은 상대의 조건만큼이나 사람에 집중한다. 상대의 말소리, 배려, 관심, 나를 얼마나 아끼는지에 대한 확신에서 결혼의 거래 가치를 찾는다. 그들은 현실적 조건을 인정하면서도, 목적론적 행복을 추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걱정에 보기 좋은 반격을 하는 연인들, 이들의 계산에는 사람이 핵심이다. 이들을 떠올리면 <부부의 세계>에 나오는  '껍데기 뿐인 결혼’의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우리 모두 목적론적 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다. 자신의 기대치보다 상대의 조건이 부족한데도, 상대와 나의 성격이 많이 다른데도, 상대가 나의 이상형과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동하는 상대를 만나 연애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존재한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연애를 할 때는 남들이 만들어놓은 자본주의적 기준이 아닌, 오로지 자신만의 내면적 기준이 작동한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연애에서는 이런 마음의 움직임을 허용하면서도, 결혼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우리는 결혼에서도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보다, 우리 내면의 기준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조건을 보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조건으로도 계산해보면 어떠냐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유독 결혼에 관해서만 자본주의적 세상이 정해놓은 가혹한 기준에 매몰된다. 거래와 계약이라는 조건이 내면의 사랑을 짓누른다. 그러나 사랑이 없다면, 사람을 향한 목적론적 사랑이 없다면 그 어떤 계산 속에서도 우리의 결혼은 행복할 수 없다. 이제는 세상이 만들어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으로 결혼이 가져다줄 행복에 대해 계산해보는 건 어떨까.


 <부부의 세계>를 다 보고 나니, 결혼은 역시 할 게 못된다던 친구 K양. 그녀에게 전하고픈 나의 의견도 위와 같다. 결혼이라는 바코드 항목 속에 상대를 향한 내면의 사랑이 포함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가족이나 타인이 정해놓은 사회적 항목이 바코드의 하위 순위로 밀려날 때, 계산은 의외로 간단해질지 모른다. 결혼이 하나의 사업이라면, 우리의 수익은 사랑과 행복이니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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