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의 세상 Oct 28. 2020

우리 모두 안을 향하는 시간

코로나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

   날씨가 선선히 부는 금요일 저녁, 평소 같으면 북적거려야 할 홍대 거리가 한산하다. 시절이 시절인가 보다. 돌아가신 할머니라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코로나 19는 예외 없이, 내가 좋아라 하는 모든 골목을 비우도록 만들었다. 국민들이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정부가 비교적 발 빠르게 대처했기에,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미국처럼 완벽한 셧다운은 면했다. 그러나 여전히 코로나란 녀석은 위력을 거두지 않고 있다. 두어 달 전 만 해도 우리나라 역시 2차 대유행을 피해갈 순 없었고, 내가 사는 서울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확진자 수는 매일 줄었다 늘었다가를 반복한다. 광고회사라 회의가 잦을 수 밖에 없는 우리 회사도 결국 재택근무를 매주 연장하고 있다.


 재택근무. 휴가 때를 제외하면 매일 가던 회사를 안 가려니 여간 어색한 게 아니다. 매번 일이 밀려들 때면, 왜 대학생은 방학이 있는데 우리는 방학이 없냐며 불평했다. 그런데, 누군가 나의 불평을 들은 것일까. 코로나19가 나를 출근에서 해방시켜줬다. 마치 영화 <나홀로 집에> 에서 가족들을 모두 없애달라는 케빈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물론, 재택근무는 처리해야 할 업무와 회의가 있으니 완전한 방학과는 거리가 있다. 메신저와 통화로 업무를 대신하니 불편한 점도 더러 생겼다. 그럼에도, 아침에 일어나 씻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아서 일을 시작해도 된다는 점, 스스로 업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 가끔은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불행 중에 겨우 찾은 행복이랄까.  


  재택근무가 한참 동안 계속되다가 서울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내려왔다. 때마침, 아는 후배가 취업에 관해 인터뷰를 요청했고, 나는 오랜만에 외출을 준비했다. 취업준비생인 후배는 광고계 선배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한 뒤, 이를 모아 전자책을 만들 계획이었다. 광고계 취업이 얼마나 어려워 졌는지, 대학생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치킨집에서 뒷풀이를 했다. 체온체크를 하고, 방명록을 작성하고, 음식이 나오고 나서야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후배 본인의 학교 생활로 이어졌다. 수업은 화상으로 이루어지고, 조별과제는 온라인으로 해결한다, 과제는 레포트로 작성하고, 시험도 집에서 본다고 했다. 내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면, 학생들은 철저히 재택수업을 하는 셈이었다. 학생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편한 점도, 불편한 점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서로의 재택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중 순간 후배가 한 말이 내 귓가에 확 꽂혔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요즘은 강제 휴식의 시간이라구요. 집에서 마냥 쉴 게 아니라 누가 어떻게 이 시간을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앞날이 달라진대요. 그래서 저도 요즘 어떻게 하면 나를 위해서 이 시간을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해요. 공부도 많이하고, 생각도 많이하구요.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예요."


 이 말을 들은 나는 의아했다. 나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절벽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코로나는 문명의 발전을 정지시키고,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며, 삶의 터전을 소멸시킨다. 코로나로 인해 백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일자리는 가파르게 줄어든다. 이 전염병은 우리의 일상에 침입해, 삶을 흔들어놓는다. 당연히 좋게 봐줄 구석이란 없다. 우리의 삶이 완벽하게 손실의 구간으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다. 한데, 누군가에게 이 시기가 휴식이 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니,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주변 지인들의 삶은 이미 많이 바뀌고 있긴 했다. 3개월 이상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워킹맘 제피양. 재택근무를 시작하고난 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했다. 다만, 퇴근과 출근이 따로 없어 일과 가사의 경계가 무너졌다. 처음에는 육아와 일이 동시에 펼쳐지는 집이 진절머리 났다고 했다. 하지만, 차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저녁이면 남편과의 대화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여전히 화상회의 프로그램 설치와 전자 결재 등으로 번거로운 게 많지만, 그녀는 내심 일과 라이프가 적절하게 밸런스를 유지하는 재택근무가 싫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재택근무는 일과 자신의 사이의 무게중심을 되찾는 회복의 시간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인들의 별스타그램 풍경도 많이 변했다. 좋아서 선택한 일이지만 가끔은 높은 업무 강도에 시달리는 광고회사. 답답한 사각의 사무실에 앉아서 몰려드는 업무 전화와 이메일에 시달리다보면 휴식은 이미 다른 세상 이야기다. 재택 근무가 시작되자 나의 동기 쿠의 업무 공간은 딱딱한 사무실에서 햇살이 따듯하게 부서지는 자취방으로 옮겨왔다. 90년대 레코드가 진열된 수납장과 빈티지 분위기 물신나는 토퍼, 푸른색 체크 무늬 커튼이 차분하게 감싸 안고 있는 그녀의 '집-사무실'은 별스타그램 단골 게시물이었다. 그녀는 날씨가 좋으면 집 근처 한적한 공원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공원이 사무실이 되는 셈이다. 이런 업무 환경에선 자연스럽게 휴식이 손에 잡힌다. 일과 휴식이 뒤섞인다. 누워서 이메일을 써도 된다. 부장님이 보시면 한 소리 할 테지만, 일만 제대로 한다면 누가 뭐라 할 텐가. 쿠가 올린 공원 사무실 사진에 달린 댓글은 다음과 같았다.


"거 참, 심의 넣기 딱 좋은 풍경이네"

 

  그렇다. 심의 넣기 딱 좋은 장소가 왜 꼭 사무실이어야만 할까. 제대로 해내고만 있다면 내가 일하는 곳이 곧 사무실이다. 일하는 공간과 방식을 바꾸어놓은 코로나19. 이 시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후배의 말을 떠올리며, 지인들이 이 시기를 보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 시기는 우리 스스로를 돌보기 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코로나 이전의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일과 경쟁, 발전, 확장 에너지의 연속이었다.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 세상에 없던 것을 이루기 위해 밖으로, 밖으로 향하는 일상이 기본값이었다. 코로나는 이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이제 다시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19 시대에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이 시기를 빨리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모이기 보단 흩어지고, 밖으로 나가기 보다 안에 머물러야만 한다. 이제부터 우리에겐 안으로 향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각자 안으로 향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족과의 시간, 생명을 돌아보는 삶,  내 주변을 돌보는 생각, 행복과 건강을 돌보는 시간,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시간, 친구들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시간, 그리고 누군가에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까지. 우리 모두 각자 안으로 향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제부터 나 역시 안의 시간을 소중히 해보려 한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집은 생소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집은 사무실, 작업실, 독서실, 헬스장이 되었다. 전염병이 만든 이 시간에, 나의 일과 삶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어지럽게 뒤섞이고 있다. 케빈은 <나홀로 집에>에서 홀로 집에 머물며 혼자만의 힘으로 도둑을 물리치고,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깨달았다. 이제, '우리 모두 집에'  있는 이 시간이 의미 있기를 바래본다. 밖은 비워두었지만 다시 안에서 채우기를.



20.10.23


-fin-


 

작가의 이전글 결혼, 계산은 해보셨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