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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의 세상 Nov 09. 2020

계단을 오르는 우리를 위한 작은 위로

"우리는 오늘도 계단을 하나 둘 걸어올라가고 있다"

 요즘 새롭게 곡 작업을 하고 있다. 희애라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취미 삼아 하나 둘 작업을 해온 게 벌써 햇수로 3년이 되었다. 이 작업 덕분에 저작권 협회에 작사가로 등록도 되어 있다. 녹음과 연습에 투여한 노력과 비용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라서 초라하다면 초라하지만, 한 달에 30원 정도의 저작권료도 들어온다. 취미생활로 이 만큼이라도 받을 수 있다니 꽤나 남는(?) 취미 인 셈이다.




 어설픈 작사 실력과 모자란 보컬 실력에도 불구하고, 광고하다 지겨울 때마다 이렇게 딴짓을 할 수 있는 건 나와 함께 작업하는 고마운 리혜 덕분이다. 리혜는 광고회사에서 만난 동기다. 서로 성격과 성향이 완전 반대다. 싸우기도 많이 싸워 붙여놓으면 물어뜯는 남매 같기도 하다. 이렇게 다른 데도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학연과 음연(?)때문이었다. 같은 대학교 동문이던 리혜와 나는 음악 이야기만 나오면 이미 오래 알고 지내온 사이처럼 죽이 잘 맞았다. 네가 작곡을 하고, 내가 작사해서 노래를 내보자고 내가 제안했을 때도 리혜는 흔쾌히 함께 해줬다. 차츰 실력을 키워가던 그녀는 아직도 취미로 음악활동을 하는 나와는 다르게, 프로 음악인들과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회사를 다니며 새로운 것에 끊임 없이 도전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따금씩 나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되어주곤 한다.

 

열심히 작업 중인 리혜의 모습.


  "나는 내가 정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영 아닌가 봐. 요즘 도통 실력이 늘지를 않아"


 얼마 전 리혜가 나에게 앓는 소리를 하며 한 말이다. 아마추어들과 함께 작업할 땐 몰랐지만, 막상 프로의 세계에 발을 들이려다 보니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금세 노력으로는 따라 잡을 수 없는, 재능이라는 물컵이 비어가는 걸 느낀 걸까.  실력이 잘 자라도록 물을 줄 수 없으니, 그 이상의 열매가 잘 열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내 흉년이라도 든 농부의 얼굴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나) 아냐,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리혜) 역시, 나는 아닌가 봐. 이거봐

나) 로또?

리혜) 얼마나 재능이 없으면, 로또마저 날 외면 하냐


 리혜는 나에게 엇나간 로또 번호를 보여주며, 그 마저도 자신의 부족한 재능 탓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운도 실력이란 말이 서러워 죽겠는데, 이제 운도 재능이란 건가 싶어서 난 괜히 번호들을 보며 코를 훌쩍였다. 나는 어찌 더 위로를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잠시 동안 머릿속을 더듬더듬거렸다.


그녀는 나름 진지했다.


그리고 별안간 위로인지 아닌지 모를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나) 너, 영어 잘하지 않냐?

리혜) 응? 갑자기 웬 영어?

나) 음악실력도 영어처럼 늘 거야, 걱정마


 지금 생각해보면 난 데 없이 갑자기 웬 영어 이야기였나 싶었을 리혜에게 미안하다. 상황이 허락치 않아 자세히 설명하진 못했지만, 내 딴에는 그런대로 멋진 위로라고 생각해 던진 말이었다.

 

 리혜의 고민에 내가 떠올린 위로는 고등학교 시절 영어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들이 모두 영어가 외워야 하는 단어들도 많고, 문법도 우리말과 달라 늘 진절머리내던 시절이었다. 영어 시간만 되면 머리를 쥐어 뜯는 반 친구들을 위해,  월레스를 닮은 영어 선생님은 이런 위로를 던진 적이 있다.영어 실력은 계단식으로 수직 상승한다고 말이다.

 처음에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숙지하고, 영어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을 때면 실력이 바로 늘 것 같지만 성적은 거의 제자리일 거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여 일정 시간 이상이 넘어가고, 실력의 임계점을 지나면 성적이 수직으로 향상될 거라는 말씀이었다. 같은 반이었던 용이는 조금이라도 영어공부를 더 시키려는 선생님의 꼬임이라며 투덜댔다. 물론, 나도 그때까지만 해도 이 무슨 '윤00 영어교실'에나 나올 법한 달콤한 유혹인가 싶기도 했었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에도 영어 실력 계단론(?)과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비록, 우리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꺼낸 말씀이지만, 살면서 나는 점차 그때 그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가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영어 공부에서는 폭발적인 성적 향상을 겪어본 일은 없지만, 내가 노력했던 영역에서 계단식 실력 향상을 이따금씩 경험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내가 소소하게 노력했던 것들은 어떤 시기가 지나면 한 단계 성장했다. 처음 기타를 연습해서 손 끝에 굳은 살이 박히고 나서부터의 기타 연주가 그랬다. 무르팍이 깨져서 반창고를 너다섯 개를 이어 붙이고 나서부터의 자전가 타기가 그랬고, 수첩 10권을 써버리고 나서부터 늘었던 카피라이팅이 그랬고, 고백이 서툴러 10번은 차여보고 나서부터의 고백 실력(?)이 그랬다.(물론, 이건 지금도 매우 어렵다) 영어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삶의 어떤 것들은 실패와 시도가 반복된 끝에서야 실력이 늘었다. 우리가 수 만 번 넘어지고 일어나고나서야 두 발로 걷게 되는 호모 사피엔스인 것처럼, 누구든 자신만의 영역에서 성장을 마주할 때가 분명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혜에게 계단식 실력 향상의 위로를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실제로 최근 본 재밌는 기사가 하나 떠올랐다. 기사는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서서히 늙지 않는다는 스탠퍼드 대학교 신경과학자 토니 와이스-코레이 연구 결과를 담고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우리는 34살, 60살, 78살 세 번 늙는다. 단백질 혈장을 통해 분석한 이 연구결과에 비추어 보면 환갑(60세)이 일반적으로 노인이 되는 기준이 되는 것도 의학적인 근거를 갖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성장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만해도 간절하게 자랐으면 하는 키는 그토록 자라지 않는다. 남자 아이들은 반에서 웬만하면 여자애들보다다 작았다. 그러다가 남학생들이 중학생이 되면 성장통을 겪을 만큼 순식간에 키가 커서 돌아온다. 여름방학만 지나도 키가 성큼 성큼 자라있었다. 소위 마의 16세를 겪으며 귀여움과 키를 맞바꾸는 남학생들이 속출한다. 성장과 노화가 동전의 앞 뒷면처럼 일맥한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생물학적으로도 특정 시기에 훌쩍 자라고 갑자기 훅 노화를 맞게 되는 계단식 곡선 아래에 있다.



출처: 네이처 메디신



 이렇듯 나이 먹는 것조차 계단식 곡선을 따를 진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왜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음악이라는 농사에 흉년이 들어 울상인 리혜에게 위로를 전한다면 나는 어쩌면 이렇게 답해야할지도 모르겠다.우리는 한 계단, 한 계단 인생이라는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라고 말이다.

 한 계단의 재능을 뿌리고 노력이란 물을 주고, 땀 흘려 일을 하지만 싹이 트고 열매가 열릴 때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그 열매를 수확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야 다음 단계의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때론 삶의 어떤 일들은 나의 뜻대로 경작되지 않는다. 수해와 가뭄으로 흉작이 드는 시기가 인생에는 반드시 온다. 지금의 리혜가 음악에서 겪는 문제가 그렇듯, 내가 카피라이팅에서 그랬듯, 우리 어머니가 나를 키울 때 그랬듯, 우리 아버지가 지하철 운전을 배울 때 그랬듯, 여러분이 삶의 여러 부분에서 그랬듯, 인생이란 경작은 그렇게 기다림과 노력의 시간을 요한다. 때론 예상치 못한 날씨가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다. 장마와 같은 절망들이 우리를 덮쳐와 포기하게 만들기를 몇 차례, 하고 해뜰 날까지 버티고 기다리며 기다린 끝에야 우린 열매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마음을 다잡으며 계단식 경작을 한 걸음 올라가는 사람은 반드시 상쾌한 공기와 함께 열매를 얻지 않을까. 라며 나는 나와 리혜, 그리고 오늘도 자신의 분야에서 고군부투할 모든 인생의 농부들을 응원한다.



우리는 오늘도 계단을 하나 둘 걸어올라가고 있다.


정상에서 보자. 친구들.

손에 한 가득 열매를 들고.


아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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