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조금씩 바뀔 거라고

by 단팥빵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른한 5교시 사회 시간이었다. 3학년 사회는 교육과정 개정 후에 표지만 예쁜,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 버렸다. 주야장천 장소에 대해서 한 단원을 떠들다가 2단원에서는 갑자기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옛날로 돌아가 버렸다. 양반, 신분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책에 사랑채와 안채가 나왔다. 교과서를 만든 대단한 교수님들을 속으로 원망하며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사랑채는 남자인 집주인과 손님들만 잘 수 있는 곳이라고 이야기해 주자 아이들은 그럼 여자랑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자느냐고 물었다. 남자와 여자는 같이 생활할 수 없었다는 남녀 칠 세 부동석 이야기를 해주자 아이들은 뭐 그런 법이 있냐며 역정을 냈다. 하하하, 그러게. 선생님도 그 때 사람이 아니라 모르겠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황당해하는 아이들을 시대에 따라 생각하는 게 달랐다고 진정시키며 "옛날과 오늘날 부엌의 다른 점을 찾아봅시다!" 상큼하게 외쳤고, 아이들은 의외로 척척 잘 찾아내었다.


“옛날에는 아궁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가스레인지로 요리해요.”

“옛날에는 한복을 입고 요리했는데 지금은 아무거나(?) 입어요.”

“옛날에는 항아리에 음식을 보관했는데 지금은 냉장고에 보관해요.”


오. 정답의 연속이었다. 이야, 우리 아이들은 국어만 빼고 다 잘하는구나!


“옛날에는 여자만 부엌에서 일을 하는데 지금은 남자도 일을 해요.”


똘똘한 건휘가 말했다. 그러게! 정말 그렇네! 아이들이 너도나도 소리쳤다.


“옛날에는 집안일은 무조건 여자들만 해야 했어요. 여자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도 거의 가지 못했어요. 배우는 건 남자들만 할 수 있었거든요. 그땐 그게 당연한 법인 줄 알고 살았어요.”


엥? 헐~ 처음 들어본다는 듯 갖가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불공평해요!”

“여자가 너무 불쌍해요.”


놀랍게도 남자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아이들보다 고작 한 세대 전에 태어난 나도 들어본 적 없는 반응이었다. 이 아이들의 집에서는 가정일의 분담이 잘 이루어지고 있나? 그래서 이렇게까지 놀라는 걸까? 마침 궁금했던 터라 부모님께서 집안일을 함께 하시는지 물어봤다.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희 엄마가 밥 하구요. 아빠가 빨래하고 청소해요.”

“우리 엄마는 요리를 잘 못해서 아빠가 요리해요.”

“아빠가 청소를 더 잘해요.”


신기했다. 정말 세상이 바뀌고 있는 걸까? 우리 집만 해도 엄마가 혼자 집안일을 다 하시고 아빠는 손 하나 까딱 안 하시는데.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선생님, 그러면 남자들은 요리하고 싶어도 못 했어요?”


요리사를 꿈꾸는 정우의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네. 옛날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아주 큰일이 난다면서 절대 못 들어가게 했어요.”


아이들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마치 처음 들어보는 세상인 것처럼. 아주아주 먼 옛날의 이해할 수 없는 문화를 접한 것처럼. 사실은 아직도 그런 세상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도.


“정말 나쁘다!”


꼬마 요리사 정우가 씩씩거렸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욱 화를 내고 황당해했다. 전혀 의도치 않았는데 오히려 성평등교육으로 흘러가버렸다. 같은 나라에서 어떤 어른들은 혐오 발언을 일삼고, 어떤 아이들은 여과 없이 혐오를 흡수하며 자라고 있는데 아직 태어난 지 10년이 채 안된 이 어린이들은 오히려 차별을 인지하고 분노하고 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겠지.


너희가 변하지 않고 올곧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불공평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너희가 일하고 살아갈 세상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보다 더 넓고 안전한 세상이길 바란다. 선생님도 노력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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