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는 어땠나. 돌이켜보면 비교적 포시랍게 자란 편인 나는 그다지 실패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인생에 실패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마는. 당연히 크고 작은 실수와 실패들은 수도 없이 했었다. 반장 선거에서 형편없는 표를 받고 떨어진 청소년기의 기억부터 입시에 실패해 이불속에 파묻혀 있었던 기억, 옆돌기에 실패하고 보조해 주시던 체육 교수님을 발로 차서 C-를 받았던 기억. 뭐, 나름 꽤 오래 사귀었던 애인과 구질구질하게 헤어진 기억도 실패라 한다면 실패가 되겠지.
저번주에 찾아갔던 최진영 작가님의 북토크에서 작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20대, 30대는 솔직히 실패했다는 말을 하면 안 돼. 그 나이는 실패할 수가 없는 나이예요. 시작하는 나이지.” 담백하게 던지신 그 말이 왜 이렇게 위로가 되던지. (작가님 짱. 애정해요.)
사실 나는 시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지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니다. 당연히 잘 볼 줄 알았던 수능을 망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다가도 ‘재필삼선’이라는 아빠의 말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서 ‘밥 맛있는 재수학원’을 검색했었다. 옆돌기는 여전히 못 하지만, 주짓수 필수 기술인 뒷구르기를 성공하고 싶어서 집 요가매트 위에서 구르고 또 굴러서 관장님의 칭찬을 받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연인과의 이별은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끝까지 미련을 떼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헤어졌어도 그 사람과 함께하며 나에 대해 더 알게 되고, 더 자라게 되었고,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즐겁고 소중한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으니까.
실패했으면 마음껏 화내고, 욕하고, 속상해하고, 질질 짜다가도 일단 자고 다음 날 눈물 닦고 일어나면 된다. 실패했다는 건 그래도 결국 뭔가 해보았다는 거니까. 실패를 하면 해봤다는 경험이 남지만, 시작이 두려워서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눈 딱 감고 해 보았을 때 조금 쪽팔렸긴 했을지라도 후회한 기억은 없었다. 오히려 '해볼걸' 하고 후회한 기억만 가득하지.
어린 시절의 나는 뭐든 잘하고 싶은 마음에 실패할까 봐 시작하는 걸 두려워했다. 물론 지금도 시작은 늘 두렵고 떨린다. 안 해봤으니 못하는 건 당연한 건데도 못 하는 게 두려워 안 했더니 그냥 안 한 사람, 진짜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듣는 말도 ‘망했어요.’, ‘망한 것 같아요.’이다. 꼬마들의 독재자로서 아이들에게도 누누이 얘기한다.
"우리 교실에 ‘망했다’는 없습니다. 일단 해 봐라. 하면 뭐라도 남는다."
실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아이들은 울고 씩씩대면서도 독재자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따른다. 그럼 결국 뭐라도 된다. 결과물이 별 볼일 없을 때도, 생각보다 잘 해냈을 때도 일단 해낸 아이들의 입가에는 뿌듯한 미소가 걸리고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간다. “거봐, 하길 잘했지? 이제 얼른 가서 놀아!”라고 하면 아이들은 만세를 부르며 달려 나간다.
그냥 하자. 생각하기 전에 그냥 하자. 앞으로 내 인생에는 무수한 실패들이 놓여있겠지. 그 실패들을 한 칸 한 칸 딛고 올라서면 더 훌쩍 커지고 단단해진 내가 될 거야.
그러니 여러분, 가능한 한 빨리 실패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