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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Oct 15. 2019

조금의 일상


정리 없이 쓰는 일기다.


1


장필순 선생님과 이상은 선생님의 연주를 연달아 보았다. 전자의 경우에는 내가 만든 이벤트에 초대를 드렸던 것이라 ‘보았다’고 단순히 말하긴 어렵지만, 어쨌건 연주를 보던 순간 만은 가타부타할 것 없이 그저 보았기 때문에 ‘보았다’라고 쓴다.


장필순 선생님의 연주는, 고작 몇 글자의 형용이 가진 태생적인 가벼움의 한계를 무릅쓰고 쓰자면, 성스러웠다. 비록 실무자로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와중 잠깐씩 만들어지는 작은 틈새에서 선생님의 공연을 본 게 전부였으나 그 순간들 속에서, 나는 아주 긴 시간과 오래 쌓인 기억들이 뒤섞이며 어딘가로 사라지는 풍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의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어딘가에서 몰려온 한 무리 아이들이 아주 조용히 앉아 선생님의 소리의 집중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 ‘예술’이나 ‘예술가’라는 사람들이 실존하긴 하는 구나,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상은 선생님의 공연을 보면서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의 음악들은 이미 선생님이 20여 년 전에 그만 둔, 잔인한 것들이다. ([외롭고 웃긴 가게]와 [공무도하가]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선생님의 음악은 이후로도 죽 변화해왔고 나는 청자로서 선생님의 작업을 반기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취향을 바꿀 이유는 없다. 취향에는 변명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공연은 ‘예술가연’ 하기 보다는 ‘엔터테인’한 느낌에 가까웠다. 새로 나온 음악들을 아티스틱하게 선보인다기 보다는 선생님과 선생님의 음악을 좇는 일군의 팬덤에게 주는 선물 같은 구성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고요하고 고고한 음악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인 탓에 조금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20여 년 가까이 선생님의 음악을 들어온 팬이기도 한 탓에 이내 ‘엔터테인먼트’에 기꺼이 빠져들었다. 돌아오면서는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에 대한 정처없는 생각들을 만났다. (간단한 이슈들이다.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왜 모든 것을 사랑해야할까.)


2


사회에선 비참한 일들이 많다. 그 비참함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여러 방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인 탓에 나 역시도 어떤 식으로든 말을 얹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해온 사람이다. 어떤 것들은 말한 대로 행했지만 어떤 것들은 그대로 행하지 않거나 오히려 반대로 한 것들도 많다. 나 역시 누군가에겐 비참함이다. 나는 내가 말 그대로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말 그대로가 되려면 일단은 말을 아껴야 한다. 그럼에도 잔여가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3


친구들과 하는 밴드는 계속 하는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할 지는 크게 정한 바가 없으나 못 할 때까지는 계속 한다. 나는 걔네들이 좋기 때문이다. (정할 것 투성이인데 친구들하고 하는 작은 밴드에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할 지 다 정해놓고 시작하고 싶진 않다.)


4


몇 곳에서 강연과 관련된 제안들이 들어왔다. 할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것 이외에도, 그런 것들을 준비하려면 무언가를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나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다만 걱정인 것은 내가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점이다.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이 부끄럽진 않다. 오히려 나는 모른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내가 먼저 모른다고 하면 상대방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 쉽다. 그럼 우리는 모두 잘 모르니까 같이 찾아나갈 수 있다. 같이 찾아나가지 않는, 혼자 가는 길 중에 좋은 길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이기도 하고, 또 생각보다는 종종 무슨 ‘답’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런 건 원래부터 없다. 그래서 그런 업무 방식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좋은 회사원이 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5


해야할 작업량이 지나치게 많다. 역시 좋은 회사원이 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과노동으로 커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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