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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Dec 17. 2019

달빛천사 OST 음질 논란에 관해

“녹음실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이라는 문장을 보고

요새는 어디 말 얹는 짓 잘 안 하려 하는데 '업'과 관련된 틀린 정보가 돌아다니는 걸 보고만 있긴 찜찜해서 쓴다.

나무위키 :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펀딩 논란



창법의 호불호, 편곡의 퀄리티 등에 대해선 쓰지 않는다. 관여할 부분이 아니기도 하고 원곡 자체가 전형적인 애니 / J-ROCK 스타일이라 여지가 많지 않기도 한 탓이다.

1) "음원 자체의 질은 객관적으로 끔찍하게 나빠졌다."는 서술에 대해

이에 대한 근거로서 주파수 대역대의 스펙트럼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아닌 탓에 스펙트럼만 보고서 이에 대해 문제가 있다 없다 말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스펙트럼만 보고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값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스펙트럼은 어디까지나 음악 data에 관련한 여러 정보값 중 하나다. 음원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선 참고를 할 뿐이지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해주는 값들이라 할 순 없다. 레코딩 시에 샘플 레이트를 높여 받는 이유는 있겠지만 48khz로 하건 96khz로 하건 그 이상으로 하건 가청주파수인 20khz 이상의 대역은 원래 꽉 차있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들리지 않을 뿐더러 20khz 이상 대역대의 소리가 나는 악기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요지는 스펙트럼으로 음질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객관적으로 끔찍하게 나빠졌다.'고 서술할 순 없다.

이에 대해 쓰는 이유는 최근 고음질 음원 등과 관련된 이슈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논란이 전개되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스펙트럼이 예쁘고 넓고 고르게 펼쳐진 것은 실제 음악의 아름다움과는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다. 최소한 아티스트들은 이에 동조하거나 이러한 기준을 본인, 그리고 파트너들과의 작업에 적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2) 투니버스 측에서 업로드한 15년 전 음원과의 비교

15년 전 음원에 비해 이번 음원은 더 근래의 기준에 맞는 사운드라 생각한다. 전형적인 애니 / J-ROCK 스타일의 곡임을 전제로 할 때, 다른 아티스트가 낸 근래의 비슷한 풍의 음원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떨어진다'는 부분을 발견하긴 어렵다. (엄청 훌륭하다,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가치판단을 제외한 관점에서의 이야기다.) 펀딩 금액이 이 정도라면 뵈젠도르퍼의 그랜드 피아노로 레코딩 해야한다거나 빈 필하모닉과 함께 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순 있겠다만, 그건 선택의 문제이며, 심지어 무조건 비싸고 훌륭한 것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나는 종종 레코딩 시에 영창 업라이트 피아노를 활용하는데 그건 내가 작업할 곡에 필요한 게 바로 그 소리이기 때문이다. 어떤 소리가 필요한지는 프로듀서와 아티스트가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판단할 문제다. 호오는 있겠으나 단순하게 '나빠졌다'고 확정적으로 서술할 순 없다.

3) "소스 녹음을 하는 프로듀싱 단의 문제가 제일 큰 것"이라는 언급에 대해

일단 소스 녹음을 하는 것은 '레코딩'이란 프로세스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듀싱'이란 단어에 대한 각주로 "음원에 쓸 악기소리, 목소리 등 여러 소스를 녹음하는 작업. 먹먹한 드럼 소리 등으로 유추해보건데 일단 프로듀싱부터 제대로 안 된 것으로 보인다"라 쓴 것 역시 틀린 내용이다.

더하여 말하자면 '먹먹한 드럼 소리'라는 최종 결과물을 듣고선 이러한 문제가 어느 프로세스에서 발생했는지 명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인적으론 먹먹하게 들리지도 않는다.

4) 그 외

"노이즈까지 낀다"

- 노이즈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으나 클리핑이 생기거나 과도하게 distort 되는 부분은 발견할 수 없었다. 소리에 색감을 주는 과정에서 발생한 Saturation을 노이즈라 오인할 수 있지만, 이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취향의 문제에 가깝다.

- 립 노이즈(입이 벌어졌다 닫힐 때 발생하는 노이즈)를 살릴 것인지 말 것인지는 프로듀서와 아티스트의 자유다. 역시 취향의 문제에 가깝다.

"유튜브 버전이라서 저음질인가?"

- 유튜브만 아니라 모든 스트리밍 플랫폼에선 원본 파일을 자신들의 방식에 맞추어 인코딩하기 때문에 음질은 반드시 열화된다. 이 뿐 아니라 음악을 재생하기 위해 사용하는 재생장치에 따라서, 이어폰이나 헤드폰 등에 따라서도 많이 바뀐다. 작은 차이가 아니라 정말로 많이 바뀐다.

"반주가 너무 커서 성우 목소리를 덮는다거나 반대로 성우 목소리가 너무 커서 반주를 덮어버리는 부분"

-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대중음악 일반의 퀄리티를 고려할 때 문제라 느낄 정도의 이상함을 발견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

"성우 목소리 자체 또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기계적으로 변조된 것 같다는 의견이 많으며 고음역대에서 거슬리는 소리"

- 현재의 거의 모든 음원 제작은 D.A.W. 상에서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진행하기 때문에 기계적(?)인 개입은 반드시 들어간다. 무언가 '변조'되었다는 느낌은 보통 modulation 계통의 이펙트를 사용했을 때 받는 느낌인데 이 음반 전반에서 보컬의 modulation이 부각된 파트는 찾을 수 없었다. 보컬 튠을 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인 느낌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이 음반에서 튜닝된 수준이 인위적이라 느낀다면 아이돌 음악을 포함한 대부분의 댄스 / 일렉트로닉 기반 음악은 거의 듣지도 못할 것이다.

"제작 영상에 녹음실 풍경이 나와있는데 벽면 마감이 나무로 되어있다. 녹음실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보통 벽면이 울퉁불퉁하고 푹신한 소재인 흡음재로 처리되어 있다. (…) 어지간히 대충 노래를 만드는게 아니면 저런 곳에서 녹음을 하지 않는다. (…) 방 안에서 발생한 소리가 난반사되어 증폭되고, 그 노이즈가 녹음 소스에 끼어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한 처리이다."

- 벽면 마감이 나무인 스튜디오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레코딩 시에 홀의 울림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는 벽면 마감이 나무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수많은 변수들에 의해 결정된다.

- 스튜디오 벽면이 울퉁불퉁한 까닭은 오히려 소리를 난반사 시키기 위함이다. 소리가 난반사 되지 않으면 특정한 주파수 대역에서 부밍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5) 마무리

아무 이득도 없는 일에 이리 체력과 시간을 투자한 것에 몹시 후회가 되지만 일단 썼으니까 올린다… 여하간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기술적인 오류가 아닌 것을 기술적인 오류라고 하면 잘못이라는 거다. 게다가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다 맞는 말인 것 마냥 써놓으면 불특정다수에게 틀린 정보가 전달되고, 또 그렇게 전달된 정보는 각종 뇌내망상과 섞이면서 증폭되어… 이런 꼴을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지겨운 일이다. 특히 아티스트들이 이런 틀린 정보에 이끌려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매우 짜친다. 그럴 시간에 영화를 한 편 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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