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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Oct 05. 2020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펑크

소음발광 첫 정규 앨범 [도화선] 발매기념 인터뷰

* 부산 로컬씬에서 도드라지는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밴드, 소음발광의 첫 정규 앨범 [도화선]의 라이너노트를 쓰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의 요약본은 지니매거진에 업로드 되었다. 라이너노트는 여러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읽을 수 있다. 인터뷰 풀버젼을 업로드한다.


* 프로듀서로서 음반을 함께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매니징 하지 않은, '서포터' 내지는 '코치'라는 다소 어정쩡한 포지션으로 소음발광의 첫 정규 앨범 [도화선]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소음발광으로부터 처음 연락왔을 때, 실은 거절할 요량으로 미팅에 나갔다.개인의 호오를 떠나 밀린 작업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밀린 작업은 쌓이고 쌓여 결국 어마어마한 노동강도로 돌아오게 되어... 쓰면 더 슬퍼질 것 같아 말을 아끼기로 한다.) 그런데 빵 먹고 커피 마시면서 그냥 이런저런 사는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그냥 뭔가를 돕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이런 역할을 뭐라 불러야 할 지 몰라서 나중에 대충 '코치'라고 둘러대기로 했다. (인디 박항서가 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몰아치는 밀린 작업으로 물 흐르듯한 수월함은 1원 한푼 어치도 없었으나, 돌이켜보면 재미있었다. 그럼 됐다. 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단편선(이하 단) _ 오늘 동수 씨 생일이라고 들었어요. 인터뷰 시간이 괜찮을까요?


강동수(이하 강) _ 집에서 파티하기로 해서 괜찮아요. (웃음)


단 _ 오늘 인터뷰는 대-코로나 시대를 맞아 언택트로 진행되고 있어요. 저는 서울에 있고, 두 분은 부산. 각자 어디에 계신가요?


강 _ 저는 집입니다.


김기영(이하 김) _ 사무실입니다.


단 _ 기영 씨는 어떤 일 하시는데요?


김 _ 신진문화행동흥이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스카펑크 밴드인 스카웨이커스의 멤버였던 이광혁 형이 만든 단체인데, 노동자의 권익 향상과 관련된 예술 콘텐츠 제작, 활동 등을 하고 있어요. 웹툰도 만들고, 컴필레이션 음반도 만들고, 공연도 만드는 등, 다양한 일을 합니다.


강 _ 아… 저는 학생이고요, 소음발광에서 곡 만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구직을 해야해서 가고 싶은 분야와 관련된 여러 커뮤니티를 뒤지고 있어요.


단 _ 커뮤니티를 뒤진다는 건, 인터넷 하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웃음)


김 _ 앉아서 찾아보고 있네! (웃음)


단 _ 소음발광은 인터뷰를 많이 진행했었나요?


강 _ 이 멤버로는 처음이에요. 그리고 제가 거의 다 해서, 이런 식으로 멤버와 함께 하는 건 처음이에요.


단 _ 처음 소음발광을 시작한 건 동수 씨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강 _ 군대에서… 불침번 같은 것을 서는데 어느날 몰래 MP3를 듣고 있었어요. 크라잉넛과 옐로우 키친의 [아워 네이션 1집]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도 전역하면 음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녁하자마자 바로 아는 형한테 연락해서 밴드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크라잉넛 / 옐로우 키친 [아워네이션]. '얼터너티브'의 영향이 크게 느껴지는 초기의 크라잉넛, 그리고 지금 들어도 실험적인 옐로우 키친의 1996년이 담겨있다.


단 _ 밴드를 하기 전에도 기타를 칠 줄 알았나요?


강 _ 알긴 했는데 깨짝깨짝 하는 수준이었죠. 스무살 때 컨츄리 음악하는 김태춘 선생님에게 기타 강습을 받았어요. 잘 가르쳐주셨는데 제가 연습을 잘 못 해가서 9개월 쯤? 하다가 짤렸어요. 더 이상 가르쳐줄 수가 없다고. (웃음)


"더 이상 가르쳐줄 수가 없다!"


김 _ 저는 14살 쯤부터 학교에서 기타를 배웠어요. 그런데 1~2년 지나니 관심 있는 친구들은 실력이 느는데 저는 유난히 실력이 안 늘더라고요. 그래서 연주자는 못 되겠다 생각을 했죠. 대신 기획을 하거나 해서, 음악 주위에서 살고 싶었어요. 그러다 (밴드 스카웨이커스의) 광혁이 형이 밴드에서 베이스 쳐볼래?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베이스 안 쳐봤는데요? 하니까 “마, 그거 쉽다. 하면 된다!” 해서… (웃음)


광혁이 형.


단 _ 두 분이 청소년기를 보낸 게 대략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 정도인 것 같아요. 청소년기에 어떤 음악을 듣고 자랐는지가 뮤지션에게 끼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더라고요. 이를테면 저보다 선배인 뮤지션들은 너바나(Nirvana)나 메탈 같은 것을 많이 들었고… 두 분은 어떤 음악을 들으셨어요?


김 _ 통기타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다보니 포크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김광석 같은. 조금 올드하죠. (웃음) 그러다가 보수동쿨러 (구)슬한이가 제 동문인데, 어디서 오아시스(Oasis)를 가지고 온 거예요. 충격적이었죠. 그래서 브리티시 팝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 그런 꿈들을 키웠던 것 같은데 역시 연주는 너무 안 되고.


강 _ 저는 형이 MP3 플레이어에 서태지와 뮤즈(Muse)를 넣어두었는데, 그런 것들을 듣다가 갑자기 (멜로딕 데스메탈 밴드인) 아치 에너미(Arch Enemy)를 알게 되어서 ‘Silverwing’을 너무 열심히 들었어요. 그러면서 <배철수의 음악캠프>도 듣고, 다른 밴드들도 조금씩 알게 되다가 고등학교 1학년 떄 크라잉넛에 엄청 빠져서 ‘1세대 인디'라고 불리는 코코어, 언니네이발관, 노브레인, 노이즈가든 같은 밴드들을 열심히 찾아 듣고 그랬어요.


단 _ 크라잉넛을 듣고 음악을 시작하게 된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웃음) 주위에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가 있었나요? 


강 _ 한 명 있었어요. 둘이서 맨날 차차(노브레인의 차승우)가 짱이다! 아냐, 크라잉넛이 짱이다! 이런 얘기나 하고, 야자시간에 문샤이너스, 갤럭시 익스프레스 같은 거 틀어놓고 몰래 슬램하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혼나고. (웃음)

영원한 떡밥, 노브레인이 짱이야! 아냐, 크라잉넛이 짱이야!


김 _ 그러다가 둘 다 2016년부터 밴드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가 4월에 처음 공연했고 동수가 9월에 첫 공연했고. 저는 블러(Blur)의 ‘Song 2’ 하고 포크락 같은 걸 연주했고. 한참 스타일을 못 잡다가 악틱 몽키즈(Arctic Monkeys),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 같은 개러지록 쪽으로 갔어요.


강 _ 저는 밴드면 무조건 자작곡이다! 이런 생각이 있어서 (소음발광의 지난 EP에 수록되었던) ‘핑크티' 같은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완전 기타팝이긴 한데 펑크 느낌이 가미된. EP도 그런 방향에 맞추어 만들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단 _ 데뷔할 때부터 서로 알게된 건가요?


김 _ 저는 베이스먼트라는 펍에서 처음 동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데 “어떤 밴드가 C F G로 잼을 하는데 완전 미친놈들이 나타났다!”는 이야기였어요. 부산 뮤지션들 중에서는 동수가 천재끼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강 _ 제가 기영 형 처음 본 건 부산대학교 앞에서 소녀상 관련된 모금공연할 때였어요. 첫인상이 좋진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가장 친해져서. (웃음) 


김 _ (소음발광 공연을 보고선) 보컬이 되게 특색있다고 생각했어요. 자기 스타일이 분명하다. 연주는 그때도 엉망진창이긴 했는데 컨셉이라고 우기고. (웃음) 그런데 곡 자체가 매력이 있었어요.


단 _ 소음발광에 대해 회자가 되는 부분 중 보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요.


강 _ 제가 원래 보컬이 아니었는데 보컬을 못 구해서 제가 하게 되었어요. 노래방 가면 김바다 노래 같은 걸 목 긁으면서 엄청 따라불렀어요. 또 군대 전역할 즈음에는 스미스(The Smiths)의 모리세이(Steven Patrick Morrissey)에게 엄청나게 감명 받은 상태라서… 한편으론 엄마가 듣는 옛날 가요를 따라 많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70~80년대 당시의 노래들.


아마 이런 것에 감명받은 듯


단 _ 기타팝은 본래 보다 예쁘장한 음악이에요. 지금의 보컬은 예쁘장한 타입은 아닌데.


강 _ 제딴에는 예쁘게 부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웃음)


단 _ 현재 멤버로 정착된 게 올해 초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난 EP와 첫 앨범의 차이가 큰데요. 스타일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나요?


김 _ 첫 앨범에 들어갈 노래들이 이미 다 만들어져 있었어요. 멤버가 아닐 때부터 이미 동수가 혼자 만든 데모를 다 들었는데, 좋았어요. 그런데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보였어요.


강 _ 계속 음악적인 인풋을 넣어보다 보니 하고 싶은 것들도 많아지고, 표현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또 옛날에 듣던 음악을 다시 듣다보니 자연스레 방향이 바뀌더라고요.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데드 케네디스(Dead Kennedys)도 듣고, 코코어도 다시 듣고. 다시 듣다보니 코코어가 정말 너무 멋있더라고요. 앨범이 나올 수록 점차 진화한다고 해야할까.


단 _ 작업하면서 가장 포인트를 주고 싶었던 것은.


강 _ 들었을 때 ‘와, 이거 진짜 완전 펑크다'라는 느낌이 들었으면 했어요.


단 _ 펑크라면, 어떤 의미에서의 펑크일까요.


강 _ 저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진짜 펑크라고 생각해요. 디스토션 걸고 쓰리코드 플레이 하고, 이런 것만이 펑크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건 그때(70~80년대)의 펑크인 거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펑크"


김 _ 제게 같이 밴드를 하자 할 때도 “새로운 펑크를 하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라몬스(The Ramones)나 블루하츠(The Blue Hearts)를 보면 진짜 자기 맘대로 해요. 멋있잖아요. 그런 걸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 _ ‘장르'로서의 펑크보다는 ‘애티튜드'로서의 펑크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 들려요. 요새는 ‘펑크록'을 표방하는 밴드가 많지 않은데요, 부산의 로컬씬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공유하고 있는 동료들이 많은가요?


강 _ 없는 것 같아요. (웃음) 펑크록은 아니지만 검은잎들이나 보수동쿨러 같은 밴드들이 우리가 하는 것을 지지하거나 응원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펑크가 아니지만 너네는 펑크지' 같은 느낌이랄까.


단 _ 첫 정규 앨범인 [도화선]에서 가장 중요한 트랙은 무엇인가요?


강 _ ‘물결'이 앨범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만히 자위나 하고 있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꽃과 아름다운 것, 빛과 파도에 대해 노래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김 _ ‘물결'을 마지막 곡으로 배치한 이유가 있어요. 서사가 깊고. 소음발광의 이전 곡들은 짧은 곡이 많은데 이번 앨범에는 긴 곡들도 많습니다.


경성대 앞 노드에서의 라이브.


단 _ 그렇다면 아까 말씀하신, ‘새로운 펑크'를 가장 강하게 추구한 트랙은 무엇일까요.


강 _ 사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고, 어딘가에서 구성을 본따온 것들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 중에선 ‘오렌지문'이 우리 근처의 밴드들은 잘 하지 않던 스타일이었던 것 같아요. 버즈콕스(Buzzcocks)나 디어헌터(Deerhunter) 같은, 좋아하는 것을 때려박다 보니 이런 게 나온 것 같아요.


김 _ 저는 ‘햇살'인데, 2번 트랙으로 넘어갈 때 갑자기 사운드가 엄청나게 커지거든요. 앨범의 정체성을 확 보여주는 트랙이기 때문에 되게 중요한 곡이라고 생각해요.


단 _ 이미 EP를 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앨범을 만드는 것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 같아요.


강 _ 모든 노래가 힘든 시기에 쓰여졌던 것인데 이를 하나로 엮으니 제게는 치유로서 다가왔어요. 분명 노래들은 화를 내고 있고 땡깡을 지르고 있는데 제게는 모든 노래가 치유가 되는 거예요. 그런 과정이 있었습니다.


김 _ 저는 (본의 아니게) 멱살 잡혀서 이끌려 갔는데요. (웃음) 들어가보니 역시 상황이 좋지 않고 돈도 없었어요. 그래서 존버를 타면서 준비를 더 해야하나, 했는데 리더의 강력한 의지 때문에 고생을 했죠. 그래도 잘 따라갔습니다. (웃음)


강 _ 다음 앨범을 빨리 만들고 싶어요. (웃음)


단 _ (부산 출신 밴드들이) 예전에는 어느 정도 커리어가 쌓이면 상경해 활동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요새는 활동해오던 지역에서 계속 활동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강 _ 로컬에 남아야죠.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요. 서울에 가서 한다고 더 잘될 거라는 생각이 없어요. 그냥 우리 사는 데서, 우리 친구들 가족들 있는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해요. 오히려 부산에 있으니까 우리 같은 음악이 만들어진 것이지, 서울에 있었다면 그저 그런 밴드로만 남았을 수도 있었겠죠.


김 _ 부산대 앞 ‘마산분식' 같은 데는 아직도 밥값이 3천 원 3천 5백 원입니다. 이제는 서울팀들이 내려오겠죠. (웃음)


언빌리버블 ,,,


단 _ 발매 이후론 어떤 활동이 예정되어 있나요?


강 _ 10월 17일, 정규 앨범 발매기념 공연이 있고요, 11월에는 (소음발광이 참여하고 있는 크루인) ‘도적단'의 컴필레이션과 관련된 이벤트가 있을 예정입니다. ‘서울습격'의 컨셉으로 뭔가를 준비하고 있고요, 내년 초에는 싱글 발매 계획이 있습니다. 열심히 돈 모으고 곡 써서 2년 내로 두 번째 정규 앨범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단 _ 마지막으로, 반드시 어필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김 _ 저 내년에 결혼합니다.


단 _ 축하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니 매거진 독자들에게 인사말 해주시죠.


김 _ 저희 음악이 좀 벽이 높을 수는 있는데 하고 싶은 음악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분명히 저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봅니다. 많이 들어주십시오.


강 _ 지니매거진에 저희 인터뷰가 걸릴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드리고, 저희가 꾸준히 음악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단 _ 마지막 멘트가 너무 엄복동 같은데…


강 _ 같이 화내고 치유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꾸며쓴 가사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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