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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Aug 31. 2020

쓰다 만 프로듀서의 일 : 천용성 [중학생 / 분더바]

전유동의 [관찰자로서의 숲]을 발매했고, 천용성의 [김일성이 죽던 해]가 나온 다음에 그러했듯 습관적으로 '프로듀서의 일'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글. 프로듀서의 일 ― [김일성이 죽던 해]의 경우. https://brunch.co.kr/@danpyunsun/53


글을 쓰다 자료를 찾아야해 구글 드라이브를 뒤지다 이번 1월 천용성의 싱글 [중학생 / 분더바]를 발매한 다음, 쓰다가 만 '프로듀서의 일'을 발견했다. 죽 써내려가다가 이번 편은 재미가 없네, 싶어서 완성시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 그러나 간만에 보니 (개인적으론) 재미있는 부분도 있어 일부만 발췌해 올린다. 싱글에 수록된 '중학생'에 대한 이야기다.


천용성 - 중학생(feat. 임주연)

(2020.1.2.)


demo 버젼의 '중학생'은 멜로디는 좋지만 구성이 완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용성의 곡이 가진 장점 중 하나가 ‘담담함’이라지만 느린 템포에서 1절과 2절이 단순히 반복되는 song form이 담담함보다는 지루함을 느끼게 했다. 구성을 다층적으로 만들어 보다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기로 했다.


먼저, 다른 보컬이 인트로를 부르고 곡이 시작되었으면 했다. 이와 비슷한 구성의 음악으로는 코나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가 있긴 한데 이 곡에선 이소라가 여성 화자의 역할을, 코나가 남성 화자 역할을 맡고 있다. 가사 또한 역할에 따라 배분되어 있다. '중학생'의 화자는 본디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여성이 부르건 남성이 부르건 혹은 다른 성이 부르던 간에, 이런 가사라면 성별을 가리지 않고 공감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생'에선 동일한 가사를 다른 성의 다른 목소리로 부르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다.


임주연 님에게 요청드린 것은 여러 이유에서였다. 주연 님의 목소리엔 인디스러운 뉘앙스와 가요스러운 뉘앙스가 모두 뭍어있다. 그리고 그 가요스러운 뉘앙스가, 용성의 아마추어스러운 보컬과는 좋은 대비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앳됨과 허스키함이 동시에 뭍어난다는 점에서도 좋았다. 특히 허스키함은 레코딩을 하는 과정에서 더욱 강조되었는데, 이를 잘 살리는 방향으로 디렉팅을 진행했다.


대개의 곡들에선 소위 후렴chorus이라 부르는 파트에서 선율이 높아지고 곡조도 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학생'의 후렴은 오히려 더욱 낮고 고요해진다. 이런 내래티브 상의 특이함을 잘 살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김일성이 죽던 해]에 '중학생'을 수록하지 않은 이유 중 한 가지다. verse와 bridge, 그리고 chorus 사이의 대조constrast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verse와 bridge는 매우 간결하게, 보편타당하고 심플하게 편곡했다.


언급했듯, 후렴의 멜로디는 낮고 고요하다. 때문에 contrast를 위한 몇 가지 장치가 필요했다.


첫 번째로, 색채감을 완전히 다르게 주었다. verse와 bridge에서의 연주가 iPhone 등에서 볼 수 있는 깔끔하고 낮은 채도의 흰색 - 회색 톤에 가깝다면 chorus에서의 연주는 보다 많은 색채들이 나풀대며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연출되길 원했다. (어디까지나 비유다.) 기타와 드럼 플레이에서 Explosion in the Sky 류의, 포스트록스러움이 묻어나게 했으나 헤비한 사운드를 지향하진 않았다. 살짝만 뭉개져 있는, 로우 게인의 드라이브 톤을 활용했다. 거칠지 않은, 부드러우나 꽉찬, 밝음을 연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원래의 보컬 멜로디를 약간 수정해 모두 당김음syncopation으로 들리게 만들었다. 당김음을 극단적으로 많이 사용하면 듣는 이의 입장에선 리듬이 매우 불안정하게 들린다. 기준이 되는 박자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학생'의 후렴은 낮고 고요하지만, 한편으론 불안한 긴장감이 감돈다. (자신이 작업을 해놓고 직접 이렇게 쓰니 매우 부끄럽다.) 리듬을 살짝 더 꼬아주는 동시에 밝은 톤을 보강해주기 위해 멜로트론의 플룻 소리를 활용했다. 편곡을 하면서도 ‘이 톤을 있는 듯 없는 듯 은근하게 잘 써먹야할 텐데’라고 생각했는데, 머쉬룸 레코딩 스튜디오의 천학주 엔지니어가 정말 ‘척하면 딱’ 좋은 소리를 만들어주었다.


일렉트릭 기타를 직접 연주했다. 나는 연주자로서의 재능이 크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레코딩을 힘들어 하는데, 게다가 포크 기타나 클래식 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는 연주해본 경험도 거의 없는 까닭에 더욱 부담이 컸다. 하지만 예산과 그 외의 여러 이유에서 내가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정확히는 내가 그렇게 결정했다.)


막상 레코딩에 들어가니 대개는 수월했으나 퍼즈톤의 기타 솔로가 원하는 퀄리티로 나오질 않았다. 평생 퍼즈톤 솔로를 해볼 일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명연주를 펼칠 리가 만무하다. 급하게 SOS를 쳤다. 자신의 밴드 트리케라톱스를 운영하고 있고 나와도 조그만 밴드를 함께 하고 있는 종훈이 기타를 연주했다. 대략의 컨셉과 주요한 기타 멜로디 정도만 공유하고 남은 여백은 그가 슥슥 그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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