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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락울 Aug 07. 2019

비혼에 이유가 필요한가요?

내가 비혼을 결정한 이유

비혼을 선언하면 정말 다양한 리액션들이 튀어나온다. 그중 대부분은  '그런 애들이 결혼 더 빨리 하더라' 였다. 


비혼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인데 본인들은 모른다. 결혼하고 싶다는 사람한테 '그런 애들이 결혼 절대 못하더라' 라고 하면 눈치 줄게 뻔한데 말이지.


그런데 최근에 낯선 리액션을 맞닥뜨렸다. '혹시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었어?' 상대방은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여기서 말하는 가정환경은 부모님 두 분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냐는 뉘앙스였다. '전혀 없습니다' 라고 딱 잘라 말하고 돌아와서 괜히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비혼을 결정한 이유 중에 가정환경의 영향은 정말 조금도 없었을까.






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 너네 아빠만큼 가정적인 사람도 없다고. 


아빠는 유명한 딸바보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기 전까지 늘 목마를 태우고 다녔다. 어디서 축제를 하면 항상 가족과 함께 갔다. 


아빠는 취미가 정말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수영이었다. 여름만 되면 엄청난 고속도로 행렬을 뚫고 날 바다로 데리고 갔다. 가끔 아빠가 하는 모임에서 수영장을 가기도 했는데 아빠는 친구들이랑 놀지 않고 나만 데리고 놀아줬다. 


사람들은 엄마에게 우리 아빠가 정말 가정적이라며 부럽다고 했다. 아빠는 아직도 고등학생이 될 늦둥이 동생이 마냥 예뻐 어쩔 줄 몰라한다.


게다가 아빠는 돈도 잘 번다. 대기업에서 정년을 채울 예정이다. 투자도 곧 잘해서 주식으로 집을 사고 최근엔 땅을 샀는데 벌써 많이 올라 여기저기서 팔아달라고 난리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꽤 괜찮은 가정환경이다. 


그럼에도 나는 비혼주의자다.




아빠는 효자였다. 장남도 아니고 차남이면서 장남 노릇은 혼자 다 했다. 할머니네 집을 지어드리고선 명의는 가족 명의로 했다. 늘 자신의 형제 남매 식구들에게 퍼주지 못해 안달했다. 이 구역의 호구가 아빠였다.


할머니는 엄마를 지독하게도 못살게 굴었다. 동네 사람들마저 혀를 끌끌 찼을 정도였다. 늦둥이 동생을 임신해 만삭인 엄마에게 김장하라며 소리를 빽빽 질러대 결국 아빠가 엄마를 차에 태우고 다신 김장 같이 하면 안 되겠다고 한건 엄마가 십여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장면 중 하나다. 손자에게는 10만원을 쥐어주고 손녀에게는 욕을 해가며 소리를 빽빽 질러댄 건 내가 십여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장면 중 하나고. 그때 아빠는 딸바보가 아니라 그냥 효자였다.


아빠가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뒷바라지했던 막내 고모는 5살 먹은 나에게 500원짜리 놀이기구를 타고 싶으면 아빠한테 돈 받아오라고 했던 할머니 못지않은 지독한 캐릭터였다. 나한테는 한없이 미운 막내 고모가 아빠에게는 한없이 예쁜 막냇동생이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렸을 땐 아빠가 좋다고 했다. 엄마가 좋아도 아빠가 슬퍼할테니 아빠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내게 그런 걸 묻지 않는다. 지금 물어보면 아빠가 싫다고 대답할 수 있는데 말이다. 


아빠는 참 좋은 사람이다. 나한테만 빼고. 엄마랑 미용실에 갔는데 아빠랑 같이 배드민턴을 치는 아줌마를 우연히 만났다. 그 아줌마가 그랬다. 저 집 남편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쓰게 웃었다. 아 글쎄요. 


여기까지 들으니 꽤 고단한 가정환경이다.


그래서 나는 비혼주의자인걸까.






'혹시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었어?' 라는 말에 '전혀 없습니다' 라고 딱 잘라 말하고 돌아왔지만 역시 내 결정엔 가정환경 탓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겠다. 일부 인정한다. 가정환경도 영향이 있긴 했네요.


하지만 가정환경이 내 결정의 100%를 차지하는 건 절대 아니다. 


최근에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는데 그 친구와 나의 가정환경이 꽤 비슷했다. 아니, 사실 내 가정환경이 조금 더 나았다. 그럼에도 그 친구는 열렬하게 결혼을 꿈꿨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 꿈과 희망으로 설레어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나는 안심했다.


그래 가정환경이 내 결정의 100%를 차지하는 건 아니었어.


교육학을 배우면, 실제 교육 현장에 뛰어들고 보면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뼈저리게 느낀다. 하지만, 내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고작 환경에 휘둘렸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나쁘다. 


환경과 독립적인 인간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걸 인정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왜' 비혼을 선택했는지 내게 물어봤다. 


그때마다 나는 구구절절 


가부장적인 게 싫어서요, 결혼하면 여자만 손해예요, 결혼해서 인생 망친 사람은 많이 봤어도 결혼 못해서 인생 망친 사람은 없더라구요, 내 돈 가지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싶은데요, 남자는 다 애예요 애 키우기 싫어요... 


라고 내 결정에 얼마나 타당한 이유들이 존재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고 고단하다 고단해. 그래 봤자 돌아오는 말은 '그런 애들이 결혼 더 빨리 하더라' 인데.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새삼 이걸 왜 고민하고 있나 싶다.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왜' 결혼이 하고 싶은지 고민하지 않던데 결혼하기 싫은 사람들은 '왜' 결혼이 하기 싫은지 고민해야 한다니. 


감성 넘치는 새벽에 결론을 내렸다. 


비혼에 '왜' 라는 질문은 거부하겠습니다. 이유가 필요합니까. 그냥 하기 싫은 거지. 가정환경이 나빴나 보다 사람이 이기적인가 보다 맘대로 추측하십시오. 한 번만 더 물어보면 '왜' 결혼하고 싶은지 질문하겠습니다. 이유가 없으면 가정환경이 나빴나 보다 사람이 독립적이지 못한가 보다 맘대로 추측하겠습니다.


후. 맘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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