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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락울 Oct 28. 2021

시골에 혼자 사는 1인가구

가끔 심심하고 자주 즐거운 하루



나는 시골에 혼자 사는 1인가구다. 


차로 10분거리에 부모님댁이 있지만 면허도 없어 특별한 목적이 있는게 아닌이상 잘 가진 않는다. 


지하철 없이 버스만 한적하게 다니는 시골에서 차도, 면허도 없는 뚜벅이 생활은 퍽 고단하다. 근사한 경치를 자랑하는 카페라도 가려면 더 시골로 들어가야한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면허를 따는 것이다. 



직장은 도보 10분 거리에 있다. 더운 여름 양산을 들고 추운 겨울 패딩을 여며가며 종종 걸으면 노래 세곡정도와 맞바꿔 직장에 도착한다.


연차가 쌓이면서 업무가 늘어 종종 야근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정시 퇴근이 가능하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업무 자체보다 사람들과 대면하며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더 많다. 현대인에게 우울증은 감기라고 하지 않던가. 정말 지치고 힘들땐 병원에 간다. 다행히 내가 사는 지역엔 신경정신과가 있고 도시의 의사선생님보다 냉소적이고 칼같지만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시는 나이 지긋한 의사선생님이 계신다. (시골 사람들이 다 푸근할거라는 건 정말 착각이다.)



일찍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밥부터 먹는다. 속이 든든해야 마음이 든든하다. 밥보다 면을 좋아하는데 독립하고나서는 밥이 더 좋아졌다. 뜨끈한 쌀밥을 먹으면 마음까지 따듯해진다. 


근처에 장볼 곳이 마땅치않아 장은 일주일에 한번 몰아서 본다. 가끔 도시의 대형마트에 가서 먹어보고싶던 식재료와 소스들을 구입해 집에서 요리하기도 한다. 


요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인데 그만큼 맛도 좋다. 



심심할 땐 동네 카페에 간다. 시골이지만 멋진 뷰는 없다. 그래도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의 음료를 마실 수 있다. 따듯한 온도에 듣기 좋은 음악이 퍼지는 카페에서 폭신한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놀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친구와 수다도 떤다. 나만의 사랑방이랄까.



그렇게 쉬다가 집에 오면 카페와는 다른 따듯함이 있다.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불 속으로 쏘옥 들어간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마신다. 얼어죽어도 아이스로 마셔야해서 얼음을 꼭 넣는다.


온 몸이 노곤노곤해지면 자야하는 신호다.


지하철에 꽉 끼어 숨막히게 회사를 다니는 대신 음악을 들으며 종종걸음으로 회사에 가고, 사람이 북적북적한 핫플 카페 대신 집 근처에 있는 나만 아는 카페에 가며, 좁은지도 모르고 사는 좁은 원룸에서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투룸으로 오니 일상이 복닥복닥 행복해진다.



하지만 때로는 도시의 생활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예쁜 옷을 입고 핫플 카페에 가서 잔뜩 찍은 사진을 신중하게 골라 sns에 업로드하고 시골에선 찾아보기 힘든 근사한 레스토랑에도 가고싶고 집순이라 대단한 메리트라 느끼지 못했던 문화생활이라는 것도 하고싶다. 



사실 나는 집순이가 아니었다. 서울에서는 워낙 사람이 많아 잘 돌아다니지 않았던 것 뿐, 시골에 오니 한적한 밖을 돌아다니는 게 너무 좋고 어떻게든 밖에 나가 놀고싶어 용을 쓴다. 놀 데 많은 홍대에 살면서도 약속이 있지않으면 밖을 잘 나오지 않았던 그 집순이가 이제는 하루에 콧바람 한번 쐬지않으면 탈이 난다. 환경이 바뀌니 사람도 바뀐다. 



도시에서 시골로 가니 행복하냐 물으면 단호하게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겠다. 


다만 나는 좀 더 여유로워졌고 뒷배가 생긴 것처럼 든든해졌고 심심함을 근사하게 바꾸는 몇가지 방법을 익혔다. 


도시에서 시골로 가니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행복하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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