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정실버의 단련일기
✣ '정실버'의 단련일기
요즈음 나는 단련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단련이 아니라 무리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단련’이라고 착각한 ‘무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무리한 여파로 아직 회복 중이다. 그러니 이걸 회복일기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단련 일기는 그다음 단계다.
재작년 가을 불면증이 심해졌다. 몸도 무겁고 마음도 지쳐있었다. 운동하면 불면증이 사라질까 싶어서 큰돈을 들여서 PT를 등록했다. 운동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트레이너 선생님과 함께 일주일에 3번 근력운동을 시작하면서 새롭게 내 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좋았다. 몸에 대한 감각을 깨우고, 적당한 운동을 통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잠도 잘 자고 기분도 좋아지는 결말, 이면 좋았을 텐데.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그만큼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나는 ‘적당히’를 모르는 한국인인 것이다. 한국인은 가성비가 중요하다. 돈과 시간을 들였으면 비용 이상의 결과를 돌려줘야 한다는 PT 트레이너 선생님의 완벽주의적이고 프로페셔널한 기질도 한몫했다. 이 두 성향이 합쳐져 시너지를 일으키며 내 몸은 극심한 변화를 통과하게 되었다.
1년 뒤에 내 운동능력은 엄청나게 향상되었다. 평생 팔굽혀펴기를 단 한 개도 성공하지 못했던 나는 25개를 연달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몸의 150%에 달하는 무게의 바벨을 데드리프트로 들어 올리고, 몸무게만큼의 바벨을 어깨에 걸고 스쿼트를 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달리다 보니 두 시간 내내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하프 마라톤을 혼자 완주 한 것이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거의 중독 상태였다. 그렇다면 운동 능력이 향상된 만큼 건강해졌는가? 잘 모르겠다.
운동을 전혀 안 하다가 해서인지 운동을 시작한 초반에 몸무게가 많이 빠졌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체중이 늘어났던 터라 그 상황이 반가웠다. 몸무게가 줄어드니 몸도 가벼워지고, 작아져서 못 입던 옷들도 다시 입게 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 목표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근육을 키우는 것이었지만 어느샌가 그 목표는 잊었다. 이제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어제보다 줄어든 체중>뿐이었다.
나는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의 무게를 달고 칼로리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식단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몸에 해로운 것은 일절 먹지 않았다. 문제는 기초대사량을 약간 넘는 식단을 유지하며 하루에 2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운동을 병행했다는 데 있다. 매주 인바디를 재고 체지방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나는 더욱 강박적으로 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을 통제했다. 식단 유지를 못 할까 봐 약속도 잡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 나눠 먹는 것을 인생의 큰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저칼로리 식단을 1년 넘게 유지하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했다. 정신적으로도 무리했고 신체적으로도 무리했다. 주변에서 그만두라고 말리기 시작했고 몸도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밤에 잠을 더욱 못 자고, 무월경을 경험하고, 종일 음식 생각만 했다. 마켓컬리 장바구니에 음식을 몇십만 원어치 담아놓았다가 비우기를 반복했다. 인스타그램 검색 피드에 올라온 음식 사진을 두 시간 내내 보고 있기도 했다. 내 인스타그램 검색 피드엔 오로지 음식 사진과 마른 몸에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피트니스 모델들 사진뿐이었다. 매일매일 쫓기듯 초조하고 불안했다. 집중력이 심각하게 떨어져서 학업도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죄송하지만,’ 으로 시작하는 사죄 메일을 여러 개 써야 했다. 친구들이 단톡방에 다이어트 주제어 금지를 선언했다. 그리고, 폭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후회하며 토하기 시작했다. 섭식장애가 온 것이다. 석 달 내내 일주일에 5번 이상 토했다. 정말로 그만둘 때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식단과 운동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원에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디 프로필 스튜디오에 예약했다. 목표를 정했으면 끝장을 봐야 했다. 결국, 체지방을 반 이상 걷어내고 바디 프로필을 찍긴 찍었다. 바디 프로필 찍기 전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다. 나는 사진에 찍힌 내 등 근육과 복근이 마음에 들었다. 목표를 이룬 내가 마음에 들었다. 역경과 고난을 이기고 이룬 성과라고 생각했었다.
목표 체중을 찍고 한시름 놓자 그다음부터 건강을 되찾기 위한 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반격이 아니라 건강을 되찾기 위한 몸의 자체적인 노력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공격당하는 기분이었다. 내 의지에 반해서 몸은 필요한 것들을 찾아서 내 입에 넣도록 했다. 몸이 나를 신뢰하지 않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몇 달 전 폭식증이 생겼을 때부터 그런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제야 자포자기하고 몸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적은 음식으로도 생존할 수 있도록 몸이 기초 대사를 낮춰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씩 먹어도 몸이 붓고 체중이 사정없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혈당이 200 이상으로 갑자기 올라가는 혈당 스파이크를 종종 경험했다. 운동마저 그만두자 체중은 순식간에 처음 시작할 때보다 10% 더 불어났다.
폭식과 토하기를 반복하던 시기에 나는 식이장애가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내 식탐이 너무 강해서, 스스로 통제를 못 해서, 내 의지가 약해빠져서 그렇다고. 지금은 내 몸이 나보다 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다. 폭식한 것은 그 음식이 내 몸에 필요하다고 몸이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내 몸은 내 의지보다 강하다. 내 몸은 생존력과 복원력이 뛰어나다. 내 몸은 제대로 작동하기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내 몸은 내가 스스로 해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 몸은 언제나 내 편이다. 실패라고도 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바로 그 사실이다. 내가 어리석고 판단력이 흐트러졌을 때도 내 몸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해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는 거. 그리고 그 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 그 몸은 언제나 내 편이라는 것.
처음엔 이 모든 과정을 실패라고 받아들였지만, 그냥 지금은 내가 나에 대해서 더 잘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 ‘몸’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운동 중독, 다이어트 중독에 가까운 상태로 들어가게 한 내 안의 어떤 공허가 있다는 것. 그 공허감에 대해서 오래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야 할지에 대해서도 오래 생각한다.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할지라도 그 존재를 모르고 편안한 것보다는 알고 괴로운 게 낫다고 생각한다. 없는 척하며 살아가기보다는 내 안에 공허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잘 다루고 함께 잘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싶다.
내 몸은 아직도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 언제 또 기아 상황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기초대사에 에너지를 넉넉히 쓰지 않고 체지방으로 무조건 저장하기만 한다. 충분히 공급된 영양 덕분에 몸무게는 더 늘었지만, 운동 능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불면증, 무월경, 불안, 우울 등의 증상은 이제 사라졌다. 집중력도 다시 회복되었다. 나는 복용하던 약을 끊었다. 마음은 한결 느긋하고 편안하다. 더 이상 체중을 재지 않고 대신 혈당을 잰다. 나는 내 몸의 혈당을 급격하게 올리는 음식의 리스트를 만들고 몸에 무리가 가는 음식들은 가능하면 안 먹거나 약간 맛만 보는 정도로 만족한다. 이전에 내 몸과의 관계가 ‘통제’에 기반했다면, 이제는 무리한 것을 방지해주는 ‘배려’에 가깝다.
이제 나는 안다. 나에게는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내 몸이 있다. 회복 능력을 갖춘. 언젠가 내가 몸의 신뢰를 회복하는 날이 다시 올 거라고 믿는다. 내 몸이 보내오는 신호에 귀 기울이고, 무리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내 몸과 마음이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하면 가능할 것이다. 단련이. 내 몸이 신뢰에 보답하여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 주리라는 것. 그것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날이 온다면 나도 마침내 단련 일기를 쓸 날이 오리라. 그날을 기다린다.
정실버 instagram @co_sa_t
소설 <산책을 듣는 시간>, 에세이 <커피와 담배> 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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